언라이트 취미합작에 타이렐로 참가했습니다.
다소 고어한 묘사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 척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죠. 그뿐인가요? 제법 잘생긴 데다가, 늘 생글생글 웃고 있죠. 옷차림도 그만하면 준수하고, 늘 끼고 다니는 헤드셋도 센스 있고. 혈통에 비해 머리도 좋고, 어느 쪽이냐면 수재급이잖아요? 물론 C.C. 씨 옆에 있어서 늘 빛이 바래지만 - 아차, 이런 말 하면 안되는데. 그 사람, C.C. 씨랑 비교되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표정이 굳어져요. 그걸 또 대놓고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로쏘 반장 정도일까. 반장만큼 성격 나쁜 엔지니어도 흔하지 않으니까요. 저번에 의장님 보좌관 의수를 수리하면서 둘이 싸우는 걸 당신도 봤어야 하는데...
아하하, 미안해요. 정말 이야기가 산으로 갔네요. 그러게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빨리 이야기할게요. 어디까지 했었더라? 그래요, 맞아요. 그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이야기였죠.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걸 알아본 건 아니에요. 그랬다고 말하면 듣기에야 그럴듯하겠지만, 이제 와서 우리 사이에 그런 허세는 필요 없겠죠.
처음 타이렐 씨가 이상해 보인 건, 어디 보자, 아마 우리 섹션에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을 거에요. 내 파트너였던 C.C. 씨가 상급 연구원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빈 자리를 채운 거라서, 처음부터 나랑 같이 근무했었죠. 솔직히 말해 오기 전부터 얕잡아 보고 있었어요. 그렇잖아요? 절대로 테크노크라트가 될 수 없는 혈통의 엔지니어 따위를 어디에 써먹어요. 기껏해야 내 발목이나 잡다가 로쏘 반장한테 매도 당하면서 쫓겨날 거다, 그 뒤치다꺼리는 다 내가 하겠구나, 재수 옴붙었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까 예상과는 다른 거였어요. 늘 웃고, 유들유들하고, 보비위도 잘 하고, 무엇보다 여기까지 올 만하구나 싶게 실력도 있고. 싫어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아유, 놀리지 말아요.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나도 여자인 걸. 타이렐 씨 같은 남자가 누님 누님 하면서 애교를 부리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자기도 주제를 알면 날 밟고 올라갈 생각 같은 건 꿈에도 안할 테니까, 쓸만한 후배 하나 생긴 셈 치기로 했죠.
그러다 일주일 쯤, 그러니까 우리 조가 비번인 날이었어요. 브런치를 먹으러 아케이드에 나갔다가 C.C. 씨랑 타이렐 씨를 보았죠. 둘 다 쇼핑 중인데 한 짐씩 들고 있었고, 그쪽도 우연히 만났는지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지더군요. 사실 이야기라기보다는 C.C. 씨가 일방적으로 말하다가 가버린 거였죠. 당신도 알잖아요, C.C.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기가 하는 말이 남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계산을 못했죠. 너무 천진난만해서, 그렇게 젊고 예쁘고 천재가 아니었다면 그보다 훨씬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되었을 것을.
아무튼 그때 난 봐 버린 거에요. 타이렐 씨는 C.C. 씨가 안 보일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거리가 좀 있었고 비스듬한 옆얼굴이긴 했지만, 그래도 난 봤어요. 잘못 본 건 아니었어요. 잘못 봤을 리가 없죠. 그런 표정은 처음 보았거든요. 그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그렇다고 무표정인 건 아니고, 난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다는 건 몰랐어요. 뭐랄까, 데드 마스크 본 적 있어요? 사람이 죽는 순간 짓는 표정 말이에요. 난 지금도 가끔 그때 그 표정을 생각해요. 그건 꼭, 그래요, 오버워킹 끝에 정지한 모니터를 본 기분이었어요.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한꺼번에 할 수가 없어서 아예 멈춰 버린, 맞아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때 말을 걸었냐고요? 아니요. 멈춰 버린 기계에게 말을 걸어봤자 대답할 리가 없잖아요. 난 그 자리에서 벗어났어요. 뭐, 솔직하게 도망쳤다고 해도 좋겠네요. 이제 와서 뭘 부끄러워 감추겠어요.
며칠 뒤에 C.C. 씨에게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C.C. 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타이렐 씨의 취미가 뭔지 알고 있냐고.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는 한 적 없다고 대답했더니, 아, 지금도 기억 나요. C.C. 씨는 정말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어요.
- 고물상을 순회하면서 폐품을 수집하는 거래요. 그걸 또 타이렐 씨는 보물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아하하~ 정말 귀엽지 않아요? 타이렐 씨답다고, 힘내라고 해줬어요. 네? 어디가 타이렐 씨답냐구요? 그야, 그 사람은 더 이상 출세할 수 없잖아요. 평생 우리 섹션에서 말단 연구원으로 일하는 게 고작일 거에요. 그러니까 폐품 수집하는 거, 꼭 어울리잖아요.
그때 연구실에는 우리 둘뿐이었어요. 하지만 타이렐 씨가 어디선가 엿듣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럴 필요가 있었겠어요? 어차피 그 사람은 면전에서 들었을 텐데. 폐품 수집이라니, 꼭 당신 처지 같아서 잘 어울린다고.
그래요, 아마 그 말 때문이었을 거에요.
타이렐 씨가 C.C. 씨를 죽인 건.
물론 처음부터 바로 타이렐 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왜냐면 난 그 때 그 사람을 동정하고 있었거든요. 면전에서 그런 모욕을 받고도 화낼 수 없었다는 거잖아요. 게다가 타이렐 씨는 그 뒤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C.C. 씨를 대했거든요. 판데모니움에서 저급한 혈통이 살아가려면 그런 수모도 감수해야하는 거였더라구요. 불쌍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여기서 버텨야 하나 경멸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난 그 뒤로 연구원들이 타이렐 씨를 놀릴 때 끼지 않았어요. 물론 그만두게 하지도 않았죠. 일개 연구원인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요. 타이렐 씨의 취미를 퍼뜨린 건 상급 연구원인 C.C. 씨였는 걸요.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닐 거에요. 그 전부터 C.C. 씨는 타이렐 씨와 친해지고 싶어했거든요. 맞아요, 아시는군요. 그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좋아해줄 걸 당연하게 여겼죠. 그러니까 거리를 두는 타이렐 씨가 신경 쓰여서, 어떻게든 대화를 나누려고 했던 거였죠.
하지만 그게 타이렐 씨에는 참을 수 없었던 거에요. 우리 섹션의 마돈나였잖아요, C.C. 씨. 다른 연구원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죠. 고물상을 순회하면서 폐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얼마나 비하될 수 있는지, 젊은이들의 어휘력이 놀라울 정도였어요. 글쎄요? 정말 그랬을까요? 난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해도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와서 결과값을 낼 수 없는 가설은 세우지 말기로 해요. 우린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C.C. 씨의 죽음은 굉장한 화제였죠. 테크노크라트 후보 중 1순위로 손꼽히는 천재가 토막난 시체로, 그것도 머리가 없어진 채로 발견되는 일은 판데모니움 역사상 전무후무했으니까요. 잠깐 동안 우리 섹션은 폐쇄되기도 했어요. 그걸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았다고 억지로 재개한 게 로쏘 반장이었죠. 그때는 그 젊은 패기가 고마웠는데, 지금은 좀 원망스럽네요. 그대로 섹션이 폐쇄된 채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면, 두 번째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또 결과값을 낼 수 없는 가설이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동의해요. 그래요, 섹션이 폐쇄되었더라도 두 번째 살인은 일어났을 거에요. 물론 그랬다면 로쏘 반장이나 당신, 혹은 내가 피해자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 젊은이들은 C.C. 씨를 잃어버린 울분을 타이렐 씨에게 푸는 걸 관두지 않았을 거에요. 맞아요. 그래서 타이렐 씨는 살인을 멈출 수 없었겠죠. 자기 영역에 허락 없이 들어선 C.C. 씨를 죽였던 것처럼, 자기 취미를 비하하는 젊은이들을 죽이고, 범인을 알아낸 로쏘 반장을 죽이고, 당신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나를 죽이고...
어머나, 부끄럽네요. 이런 몸이 되어서도 나는 낡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요. 그래요, 당신 지적이 옳아요. 타이렐 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는 한 번도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살인이라고 표현했던 걸 용서하세요.
타이렐 씨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어요. 그저 취미 생활을 계속했을 뿐. 그저 폐품을 수집했을 뿐.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거죠, 안 그래요? 그에게 수집된 '폐품'으로, 쓸모없는 머리통들의 집합으로.
그러지 말아요, C.C. 씨. 이 보존액은 ph에 민감하게 반응한답니다.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폐품은 우는 법이 아니랍니다.
쉬이- 다들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요. 누군가 오고 있어요.
타이렐 씨가 오고 있어요.
-Fin.
***201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