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이날 동굴곰은 무슨 배짱인지 밀린 업이 산더미인데! 합작이 세 개나 있는데!! 평소 언라에서 커플이라고 생각하던 아홉 쌍을 가지고 사다리를 탔습니다. 네, 시키지도 않은 사약을 열심히 고으기 시작한 거죠.
업보는 밀리고 밀려 아직 반밖에 고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조금씩 채워나갈 생각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겠죠, 아마도...
※커플링은 무작위이므로 성별과 수위, 취향이 제각각입니다. 주의하시길.
"그대가 이번 세대의 '신부'인가."
베른하드는 흠칫 놀랐다. 나름 검술을 익힌 몸이라 자부하고 있었으나, 누군가 나타난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도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감지할 수 없었다. 과연 인간이 아닌 것인가. 베른하드는 마른 입술을 깨물며 한삼 아래 숨겨둔 비수를 고쳐쥐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적어도 한 번은, 한 번쯤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긴장할 것 없다. 해치지 않을 테니."
수백 년 동안 왕실의 피가 가장 진한 소녀를 받아갔던 이계의 마왕에게, 한 번쯤은...
"남자를 받는 것은 처음이라, 내쪽이 오히려 긴장된다만."
"?!"
갑자기 왼쪽 어깨 위에서 들린,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비수를 뽑아들고 말았다. 그러나 '신부'로 결정된 날 벼린 뒤 매일밤 갈아 머리카락도 자를 정도로 예리하게 날을 세운 비수는 비단 한삼과 거기 감싸여 있던 여윈 손을 조금 베었을 뿐,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있군."
손은, 남자인 베른하드의 손이 작아 보일 정도로 크고 흑옥을 조각한 것처럼 새까맣다는 걸 제외하면, 인간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짐승의 발톱이나 악마의 뿔 같은 것도 나 있지 않았다.
"봐라, 다쳤지 않느냐."
단지, 커다란 만큼 과연 악력이 대단한 손이 비수를 움켜쥔 베른하드의 손목을 조용히 압박하며,
"놓아라."
"으...읏...!"
"고집이 세군. 뭐, 그런 인간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흡!"
마왕은 인간처럼 생긴 것이 아닌가? 지금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팔로 미루어 이해할 수 없는 각도에서 다른 손이 뻗어나와 턱을 움켜쥐고 들어올려, 베른하드는 눈을 크게 떴다. 저항할 틈도 없이, 놀라 살짝 벌어진 채로 입술을 내리누른다. 상냥하지만 엄격하게 치열을 가르고 들어와 혀를 빨아들이며 입안을 유린하는 혀를 깨물려고도 해보았지만,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땡그렁. 참으로 무력하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놓친 비수가, 태고의 사당 바닥을 뒤덮은 이끼 낀 석파 위로 떨어졌다.
"가자, '신부'여."
다정한 목소리가, 마치 어둠 그 자체인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에서 들려왔다. 두 개의 굳건한 팔이 여위었으나 장신의 남자, 그것도 한 세대에 한 번 치러지는 '마왕의 결혼식'을 위해 왕실이 금고를 털어 마련한 의상과 장신구로 치렁치렁하게 감싸진 몸을 가볍게 안아올렸다.
"두려워할 것 없다."
젖은 입술이 귓가에서 속삭여, 베른하드는 저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목소리가 낮고 그윽하게 웃으며 그를 고쳐 안았다.
"상냥하게 대해주마."
너희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니 말이다. 오만한 이계의 존재가 베푸는 자비의 언약에, 베른하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어둠 한 자락이 부드럽게 훔쳐 주었다.
-END.
"마치 네쪽이 신부인 것 같구나."
"모욕입니다."
"그러하냐."
천공의 여왕이 조용히 웃었다. 7백년 동안 철혈로 옥좌를 지켜온 여왕의 정신은 유리와 쇠로 된 어린 소녀 인형에 깃들어 있었다. 감히 갖혀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석을 아로새긴 눈동자는 영명하게 빛났다.
"허나 너는 아름답다, 브레이즈. 그 미모는 자만해도 될 것이다."
"저는 사내입니다. 반반한 얼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오..."
여왕이 신부의 베일 아래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브레이즈는 난처한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천공의 여왕이 지상에서 배필을 골라 올리는 이 혼약은 결코 동등한 것이 아니었다. 여왕에게는 단지 잘생긴 신랑이 필요할 뿐이지만, 지상의 공자에게는 가난하고 무력한 조국을 부흥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너무 무례했나? 어찌 변명해야 하나? 이제 와서 웃으며 입발림을 해야 하나? 웃음을 팔아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브레이즈는 놀라 시선을 들어올렸다. 연회장의 상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었기에, 어린 소녀의 얼굴은 - 마치 그의 여동생처럼 - 브레이즈보다 낮은 눈높이로 연회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억지로 웃을 필요는 없다. 웃어주면 좋겠다만."
"폐하..."
"레드그레이브라고 부르거라, 브레이즈. 너는 이제 짐의 신랑이 아니냐."
"..."
"브레이즈."
소녀의 옆얼굴이 쓴웃음을 떠올린 채 말을 이었다.
"타고난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네가 원하여 얻은 것도, 거부하여 버린 것도 아닐 터. 나는 아름다운 신랑을 원하였고, 너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내였다. 그러니 네게 기회를 준 너의 미모에 감사함이 옳다...단."
레드그레이브가 나란히 앉은 브레이즈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차갑고, 무겁고, 작고, 가느다란 쇠인형의 손이 다정하게 따스하고 부드러운 남자의 손을 도닥였다.
"네가 원하여 얻은 것, 거부하여 버린 것을 지금부터 내게 보여주려무나. 그리하여 내가 브레이즈라는 사내가 스스로 원하여 된 바를 판단하게 해주거라."
"...알겠습니다, 레드그레이브."
"앞으로가 즐겁겠구나."
여왕이 호호호- 소녀라기보다는 노파처럼 느긋하게 웃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연회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END.
"고양이를 물렸더니 개를 데려오다니, 중신이라는 것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찌 이리 진부하냐."
어찌나 기가 찼던지, 그룬왈드는 평소보가 말이 길었다. 물론 그가 평소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파르모는 그저 커다란 노을빛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비켜라."
"싫어."
"베겠다."
"해보시지. 동맹이 깨어질 걸."
"하."
조그만 계집애가 제법 당돌하구나.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그룬왈드는 그녀의 목을 당장이라도 찌를 듯 매섭게 들이대고 있던 검을 늦추었다. 하지만 그대로 거두는 것도 어쩐지 약오르는 노릇이라 손목을 슬쩍 내렸다. 쇄골 사이를 지나 아래로 떨어지는 칼끝을 따라 하늘하늘 얄따란 잠옷에 실금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꺄악!"
크르르르릉-
팔락이며 흘러내리는 천조각 사이로 평소 햇빛을 보지 않아 뽀얀 속살이 드러나는 바람에, 파르모는 당황하여 실프 앞으로 가로막으며 벌리고 있던 팔을 모아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녀 뒤에 머리를 낮추고 경계하고 있던 실프가 다시금 목을 울리고 등의 털을 세웠다.
"흠, 계집임에는 틀림없군."
"이, 이...야만인!!!"
"숲의 민족이 할 말이냐."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든 파르모가 다른 색깔의 눈물을 머금으며 그룬왈드를 노려보았다. 오직 자기 손에 죽은 자만을 벗하고 신뢰한다 알려진 론즈브라우의 젊은 왕이 오른손에 든 애검을 왼손의 칼집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빈 손을 자신에게 내미는 것을, 파르모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
"들어가자."
"...실프는?"
"우문이군."
그룬왈드의 단정한 얼굴에 실소가 피어올랐다. 처음 보았을 때, 시체가 겹겹이 쌓인 전장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로 물든 채 악마처럼 광소하고 있던 바로 그 남자가. 파르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초야를 개와 셋이 보내랴? 돌려 보내라."
"...베지 않는 거지?"
"충성하는 개는 싫지 않다. 혼수라 생각하지."
"..."
무어라 말할 듯 연지색 입술을 오물거리던 파르모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실프의 목을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 옷자락을 여미느라 한쪽 팔만 써서 어색하고 불편한 자세였지만, 커다란 신수는 귀를 살짝 젖히고 부드러운 콧소리를 내어 어린 주인을 격려했다. 파르모가 코끝에 살짝 입을 맞추자, 실프는 커다란 몸을 소리없이 일으켜 나타났을 때처럼, 마치 여기가 탑 중턱의 신방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테라스 난간을 넘어 사라졌다.
"들어가자."
"아..."
실프가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파르모의 어깨 위로 묵직한 천이 덮였다. 그룬왈드가 평소 걸치는 질박한 망토였다. 소박하지만 격식을 갖춘 예복으로 가마에서 내린 신부를 맞이한 론즈브라우 왕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제복 차림이었고, 심지어 검대를 풀지도 않았었다. 먼저 신방으로 안내되어 정중하지만 무정한 시녀들의 손에 예복이 벗겨지고 반투명한 레이스 잠옷 한 겹을 입었을 뿐인 파르모 앞에 다시 나타난 그룬왈드는 옷깃 하나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때는 굴욕에 떨며 팔려온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지만,
"저기..."
"음?"
"내가...밉지 않아?"
"..."
한 발 앞서 테라스와 침실을 잇는 문으로 들어가던 그룬왈드가 걸음을 멈추었다. 기껏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지금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르모는 알고 싶었다. 오늘 두 사람은 론즈브라우와 콜가르의 적법한 절차에 따라 부부가 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초야를 치를 것이다. 두 사람의 결합은 곧 론즈브라우와 콜가르, 나아가 루비오나의 동맹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파르모는 알아야 했다. 자신의 지아비가 된 이 남자가, 그토록 광기어린 살육을 일삼던 이 남자가,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우는 언약을 하게 만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숲의 소녀야."
"파르모."
"...파르모."
이제부터 영원토록 반려가 될 여자의 이름을 혀끝에서 굴리며, 그룬왈드는 돌아섰다. 달빛 아래, 커다란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그러나 입술을 꼭 깨물고, 자신의 망토로 자그마한 몸을 감싼 채 올려다 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자신의 운명은 죽이고 또 죽인 끝에 죽는 것이라 여겼다. 부모도, 형제도, 충신과 역신도, 백성도, 아군도, 적군도, 모두 그를 죽이지 못해 그에게 죽어갔다.
그렇다면 이 숲에서 온, 핏방울 하나 묻지 않은 순결한 여자아이는 어떨까.
"파르모."
그룬왈드가 웃으며 손을 내밀어 파르모의 어깨를 잡았다.
"기억해 두어라. 증오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살아남는 것이지."
"무슨...꺅!"
"힘써 살아남아 보아라, 숲의 딸아."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그룬왈드는 가볍게 파르모를 안아올렸다. 초야를 맞이하기 위해 신방으로 향하는 론즈브라우 국왕의 등 뒤에서, 말라붙은 핏빛처럼 묵직한 커튼이 밤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END.
잠을 깨운 것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었다. 아직 땀이 덜 말라 촉촉한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 숨은 귓불을 찾아내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뺨을 쓸어내린다. 그러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쓰다듬기 시작하여,
"그...그만 해라..."
딱히 말을 더듬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목이 잠겨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스스로 들어도 낯설 정도로 쉰 목소리는 의도만큼 매섭게 쏘아붙일 수 없었고, 떨리는 말꼬리는 움직이는 입술을 쓰다듬는 손가락에 묻혀 스러졌다.
"깼어?"
그리고 밤새 그가 울고 소리치도록 괴롭힌 끝에 결국 목이 쉬게 만든 장본인은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치고 모로 누워서 한 손을 뻗어 살가드를 어루만진다는 참으로 느긋하고 제멋대로인 자세를 취한 채, 뻔뻔스러울 정도로 상큼한 윙크를 날리는 것이었다.
"그렇게...주무르면, 누구라도...깬다."
"아하하, 미안, 미안.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귀엽..."
살가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야만인의 언어는 의미가 다른가? 아무리 이쪽의 키와 체중이 10 단위로 작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사의 훈련까지 받은 어엿한 성인 남성이지 않은가. 어젯밤 침대에서 연신 예쁘다는 둥 곱다는 둥 떠들어댈 때는 발정한 야만인의 헛소리로 흘려들었지만...까지 생각했을 때, 그의 뺨에 짙은 피부색으로도 숨길 수 없는 홍조가 번졌다. 어젯밤에는 흘려듣지 않았더라도 다잡아 따질 상황이 아니었던 것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색의 변화로 생각마저 읽어낸 것처럼,
"좋았지?"
"무...므슨 소리얏!"
시선을 떨군 빈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오는 은근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새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스스로의 추태에 고개를 숙인 살가드의 머리 위로 쿡쿡쿡, 유쾌한 웃음소리가 우박처럼 떨어졌다.
"이것 참, 정숙한 신/부/로군."
"...읏..."
살가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 그는 이 남자, 프리드리히의 신부였다. 어제, 두 사람은 판데모니움의 여왕 레드그레이브와 레지먼트의 수장 베른하르트를 비롯한 양국의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를 치렀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이제 어느 한쪽이 죽더라도 결코 끊어지지 않을 인연으로 맺어진 상태인 것이다.
물론 강요된 혼인은 아니었다. 제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사숙고한 끝에 승락한 것은 분명 살가드 본인의 의지였다. 레드그레이브님을 위해, 천공과 지상 간에 유구하게 이어져 마땅한 평화를 위해, 이 야만인의 반려가 되는 것을...!
"어이어이, 어려운 생각 하지 마."
불쑥 다가온 손이 살가드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억지로 마주친 시선은 투명한 초록색으로, 빙글빙글 웃고 있는 큼직한 입매와 달리 겨울의 압생트처럼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래, 이 눈이다. 혼례식에서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마음에 걸렸던 것은.
"예쁜 이마에 주름지잖아. 우린 그냥 이형생물이나 쳐잡고 맛있는 걸 먹고 신나게 즐기면 되는 거야. 평화니 맹약이니 정치 같은 어려운 건 형이랑 그 꼬마 여왕님께 맡겨두고."
"...뭐?"
"너, 그 여왕님을 위해 나하고 결혼한 거지? 굉장한 충성심이야. 나, 그런 거 싫어하지 않거든..."
"닥쳐라! 감히 레드그레이브님을!!"
저도 모르게 발끈한 살가드가 프리드리히의 손을 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침대에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
"귀엽기는 한데..."
등을 돌린 것이 패인이었다. 억센 손이 뒤통수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베개에 쳐박아버린 것이다. 숨을 쉴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어 단지 버둥거릴 뿐인 몸부림을 잠깐 동안 음미한 프리드리히는,
"신랑한테 그런 말버릇은 곤란해, 나의 신부."
"흐...읏...너, 이...야만인..."
손을 놓는 대신 엎어진 살가드의 허리를 타고 앉아버렸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느라 물결치는 짙은 색깔의 등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그러니까 벌을 줘야지."
"아읏!"
작살을 찌르듯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목소리는 귓가를 지나 목덜미에 닿았고, 아이들을 겁주는 옛날 이야기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섭게 깨물고 세차게 빨아들였다. 살가드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이미 밤새도록 충분히 시달린 몸은 허리를 깔린 상태에서 변변하게 반항할 수 없었다.
야만인. 짐승. 살가드의 반려는 야수였다. 잡을 수 없는 사냥감, 혹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사냥꾼. 그것은 유서 깊은 천공도시 판데모니움에서 태어나 그 질서와 조화 속에서 살아온 라이브리언이 일찌기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원초적인 폭력이었다.
"그만...아파...그만해...그만해, 프리드리히...제발!!!"
"...흠."
듣고 싶어하는 말을 들려준 다음에야 살가드의 고통은 끝났다. 고통과 수치심에 울먹이는 신부를 끌어안고, 프리드리히는 나른하게 속삭였다.
"울지 마. 멍이 예쁘게 들었으니까. 이제 좀 남자답네."
"...야만인..."
"그 야만인과 정략결혼을 선택한 건 너희 천공의 돼지들이지, 안 그래?"
"..."
"또, 또 어려운 생각 한다."
주름진다니까. 마디가 굵은 손이 짙은 색깔의 이마를 문질렀다. 피차 벌거벗었고, 밤새도록 구하고 구해졌던 몸들이다. 살가드는 프리드리히의 손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프리드리히는 살가드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필요 없게 되기 전, 지상의 야수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삭였다.
"둘만 있을 때는 마음대로 굴어도 돼."
"진심인가?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하하, 마음대로. 저 위에서는 어떤 짐승을 기르는지 궁금하니까."
"...레드그레이브님을 무례하게 언급하지 마라, 야만인."
"음, 아까는 실례했어."
"모든 것은 레드그레이브님을 위해서다."
"난 형을 위해 섹스하지는 않는데."
"야만인."
"너는 그 야만인의 반려라고."
프리드리히가 유쾌하게 웃었다. 반려의 홍조에 녹아내린 독주가 가늘게 뜬 눈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흐트러진 아마색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녹색 눈의 야수는 생각했다. 재미있는 신혼이 되겠군. 결혼이란 거, 나쁘지 않은데?
-END.
다섯. 아치볼드x브라우닝 합작 예정이므로 생략
여섯. 루드x레온
일곱. 아벨x로쏘
여덟. 코브x메렌
아홉. 아수라x이블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