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나 빠져 버려요."
"기집애가 말버릇 하고는!"
메리디아나의 손짓을 동반한 폭언에 버럭 화를 내기는 했지만, 카스발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여기 다 적혀 있는 거 뭘 또 귀찮게 설명해'라며 의뢰서만 던져 주고 간 게 틀림없으니, 이대로 계속 추궁 당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전략상 후퇴를 한 것 - 일 리가 있나. 바빠서겠지.
<노란 단풍잎>에서 아점을 먹으며 읽은 의뢰서에 따르면 '분실'된 시엔화룽 소유의 생물체는 모두 일곱 마리였다. 나샤스에 화사, 예삐 -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에 두오막스, 로토알루코, 니플라마, 게다가 번식기의 라크까지! 이쯤 되면 카스발이 시엔화룽을 타이쿤에 매달고 지안을 세 바퀴 반 돌 때 메리디아나는 두 마리 카푸슈나와 함께 <스펠라에우스 대필소>의 4층 발코니에 올라가 응원의 춤이라도 춰야할 판이다. 물론 그 전에 남은 일곱, 아니지, 방금 두오막스를 베었으니 여섯 마리를 어떻게든 '처리'해야겠지만.
의뢰서에 첨부된, 에샤의 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두오막스의 위험도는 일곱 마리 가운데 중하 정도였다. 그만큼 위험한 생물들이 '분실'된 것이다. 지안의 군사와 치안을 책임지는 제1자문위원이자 에우고의 대장이라면 바빠 마땅하지. 안 바쁘면 세금도둑이잖아. 그러니 제발 이번 사태 때문에 바쁜 것이기를 바라요, 카스발. 아니면 진짜 쿠얌구덩이에 던져버릴 거야.
꾸웅?
깨끗하게 두쪽으로 갈라진 두오막스에서 흘러나온 피웅덩이에 코끝을 대고 냄새를 맡던 쿠바카가, 축 늘어진 큼직한 귀를 쫑긋거리며 메리디아나쪽을 바라보았다.
"응? 왜? 혹시 엄마가 소리내서 생각하는 소녀스러운 버릇이라도 있..."
"오우, 노오오오!"
쿠바카의 시선 끝, 메리디아나의 어깨 너머에서 비단을 좍좍 찢는 것처럼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죽은 두오막스가 무서운 듯 엄마 다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야무키가 화들짝 놀라 갸웅... 낮게 울었다.
"이 무슨 테러블한 광경이람! 마이 아이즈! 마이 아이즈!!"
"하필 이럴 때..."
메리디아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그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돌아본 것은, 에샤의 잘 정돈된 포석鋪石이 부서지도록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는 거대한 누에 애벌레에게 들이받히는 불운하고도 불쾌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두오막스! 마이 베르논 카피투시안 두오막스!! 아아, 원 피스 두오막스가 투 피스 두오막스가 되다니! 죽음의 데스를 맞이하다니! 트래지디! 마이 트래지디!!"
꾸우웅?
"안돼, 쿠바카. 물러나."
맹렬한 기세로 굴러온 크고 포동포동하고 하얗고 시끄럽고 꾸물꾸물 움직이는 물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려던 쿠바카가, 메리디아나의 단호한 제지에 아쉬운 듯 무춤무춤 뒤로 물러났다.
"대체 누가 두오막스를 이런 테러블한 꼴로 만들었지요? 누구죠? 누구예요! 후!!"
여섯 개의 앞다리로 얼굴을 가린다, 뒷목을 잡는다, 허공에 주먹을 휘두른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시엔화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서 이쪽을 보고 있는 - 에샤 지구의 거주자답게(?) 현명한 - 주민들과 메리디아나를 무심히 스쳐 지나간 시선이 쿠바카와 야무키에 닿은 순간 번쩍, 말 그대로 번쩍번쩍 빛났다.
"카푸슈나! 그렇다면 당신이 메리디아나 스펠라에우스군요!"
"우리, 구면입니다만?"
"알 게 뭐에요! 지안에 휴먼은 많지만 카푸슈나는 온리 투! 베리베리 프레셔스라구요!"
"아, 네, 영광입니다. 아무튼 안 팔아요."
"루드한 레이디 같으니!!"
바로 지난 주에 '스마트한 비즈니스'를 제의했다가 '바이올런스한 리젝션'에 봉변을 당한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시엔화룽은 얼굴을 부풀리며 화를 냈다. 아, 그러니까 한동안 만나기 싫었는데. 메리디아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만큼 위험한 '분실물'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자기는 절대 밖에 안 나올 줄 알았더니 무슨 배짱으로 저러고 다닌담. 설마 자기를 미끼로 써서 그놈들을 불러내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두오막스를 해친 건 당신인가요?!"
"아, 댁의 두오막스가 중앙도서관의 사서를 해치려고 하더라고요."
"맙소사, 이 얼마나 새비지한 레이디인가! 당신이라면 소드를 쓰지 않고도..."
여섯 개의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고 격렬히 항의하던 시엔화룽이 갑자기 말을 뚝 멈췄다. 왜 저래? 메리디아나는 시엔화룽이 바라보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거리 저편의 골목에서, 만물상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햄스터 총각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힉스랬지? 저 녀석도 오늘 쳇바퀴 돌리듯 바쁘군.
"흐, 흥! 지금은 바쁘니까 비즈니스 토킹은 다음에 하도록 하죠!"
"비즈니스고 뭐고...흠."
메리디아나가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시엔화룽은 달려왔을 때만큼이나 다급하게 힉스가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심지어, 방금까지 격렬하게 항의하던 두오막스의 시체조차 수습하지 않았다. 수상하다. 더할 나위 없이 수상하다. 아무래도 시엔화룽이 에우고에 알리지 않은 정보가 더 있는 게 아닌지 닥달해야겠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메리디아나는 시엔화룽이 사라진 골목을 향해 달려갔다. 두 마리 카푸슈나가 겅중겅중 따라왔다.
꾸웅?
"아니야, 쿰. 놀러 가는 거 아니야."
갸우우...
"미안미안. 그치만 한 번 더 이야기해야 해.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는 안 보게 해줄께, 얌."
두 마리 카푸슈나를 어르고 달래는 찰나에 이미 골목에 다다랐다. 막 골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베리 사납잖니! 힉스!!"
"그, 예삐는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일단 좀 물러나시고..."
"무슨 풀리쉬한 소리를 하니! 이렇게 당장! 이미디어틀리! 잡으란 말야!"
"대인님!"
"꺄악! 이 녀석이 나를 물었어!!"
"안돼요, 대인님!!"
"못된 것! 이 못된...꺄아아아아아악!"
예삐? 지금 예삐라고 했어? 메리디아나는 깜짝 놀라 뛰어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쿠바카가 그녀의 옷자락을 덥석 물고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얘가 왜 이래- 하면서도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고,
"으아아!!!"
"힉스?!"
안 그랬으면 부딪혔을 방향에서 커다란 햄스터가 뛰어, 아니, 굴러 나왔다. 구르다 못해 가까운 가로등에 부딪혀 멈춘 힉스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그러면 안된다니까, 예삐야!"
"꺄아아아아-"
갸우웅-!
어디선가 들려온 새된 비명소리에, 드물게 쿠바카보다 야무키가 먼저 반응했다. 검은 카푸슈나가 달을 향해 짖는 늑대처럼 높고 새된 하울링을 올리자, 금색 카푸슈나가 메리디아나를 끌어당기느라 땅에 붙였던 엉덩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쿠우웅!!! 그것은 쿠바카가 지금까지 장난으로 짖던 것과 다른 묵직하고 사나운 울음이었다.
"헬프 미! 레스큐 미!! 세이브 미!!! 살려줘요!!!!!"
그에 대답하듯 요란한 외침이 꼬리를 끌며 불쑥 솟아올랐다. 메리디아나는 재빨리 왼쪽 허리에 찬 장검에 오른손을 댔다. 머릿속에서 아까 읽었던 예삐 -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의 정보가 빠르게 흘러갔다.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
포유류 개과. 잡식성.
모크세티온 차원에서만 발견됨.
해당 차원을 비롯, 다른 많은 차원에서 발견되는 포유류 개과 대형견종과 외형 및 생태가 유사하다.
머리가 셋이며, 세 개의 머리가 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지닌 개별 개체이다.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의 머리 중 중앙에 있는 것은 평생 잠을 자며, 나머지 두 개가 생물로써 공생하며 존재한다.
중앙의 세 번째 머리는 매우 난폭하며, 깨어났을 때 아직 연구되지 않은 작용에 의해 신체가 비약적으로 거대화되며, 필연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에 대한 깊은 연구는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의 세 번째 머리가 깨는 것은 물리적인 타격으로 인한 고통, 중증의 질병, 중증의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세 번째 머리가 깨어났을 때의...
"예삐야...어떡해...우리 예삐...대인님...히이잉...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한댔는데..."
등 뒤에서 햄스터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 털뭉치가 우는 거에 약한데. 내심 힉스가 마음에 들었던 메리디아나는 혀를 찼다. 중앙도서관 앞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나즈막하고 올록볼록 앙증맞은 스카이라인 위로 크고 시꺼먼 개 머리가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울먹이는 왼쪽 머리, 화가 난 듯 시선을 돌린 오른쪽 머리, 그리고 흉폭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흔드는 가운데 머리의 입에는,
"하지 말라니까, 예삐야! 그냥 한 대 살짝 때린 거잖니! 우리 말로 하자, 응? 말로 하자구!!"
송곳니에 걸린 비단 조끼가 찢어질까봐 바둥거리지도 못하고 덜덜 떨면서 외치는 시안화룽이 있었다. 살짝 좋아하네. 타이쿤에 매달고 지안을 세 바퀴 반 도는 걸로 되겠어? 그때 쓸 로프를 줄로 쓸어놓을 테다.
쿠우우...
"그래, 쿰."
엄마를 보호하듯 한 발 앞에서 머리를 낮추고 목을 울리는 금색 카푸슈나를 도닥이며, 메리디아나는 보고서의 마지막 단락을 떠올렸다.
세 번째 머리가 깨어났을 때의 대비책은 다음과 같다.
1. 살해한다. (주:거대화한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는 매우 흉폭하며 또한 강력하다)
2.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주:얼마나 걸리는지 실험한 결과는 보고된 바 없다)
3. 물에 빠뜨린다. (주: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는 물놀이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 아무래도 지금부터 쟤랑 놀아야할 것 같다."
갸우.
야무키가 한숨을 쉬었다.
***
"카스발 대장님! 긴급보고입니다!!"
"뭔데. 나 바쁜 거 지금 안 보이냐."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가 발견되었습니다!"
"죽었냐?"
"아닙니다!"
"뭐야, 설마 그 기지...스펠라에우스 대필사가 죽었나?"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야!"
"에샤 지구에 가까운 지안 호수의 수면에서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 한 마리, 카푸슈나 두 마리, 주민 두 명을 발견했습니다!"
"주민 두 명?"
"메리디아나 스펠라에우스 대필사와 시엔화룽 대인입니다!"
"대인 좋아하네. 걔네 거기서 뭐 하고 있는데?"
"에...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하지 못해? 나 지금 바빠서 신경 사납거든?"
"죄송합니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소리로 또박또박 제대로 말해, 임마."
"죄송합니다! 이모크세티온 세티롭스 한 마리와 금색 카푸슈나 한 마리가 얕은 물가에서 시엔화룽 한 명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
"대장님?"
"당장 건져."
"넵! 알겠습니다!"
-END.
ps. 지안의 호수에서는 아무 것도 뜰 수 없다는 설정이지요! '물놀이'라는 단어가 그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에 마지막 단락을 수정합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