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
사랑하는 안나마리, 허락도 받지 않고 네 일기장에 글을 남기는 무례를 용서하렴.
이건 나만의 언어, 말하자면 나의 솔로모니쉬란다. 그러니 너는 말하거나 쓸 수는 없어도 읽을 수 있을 거야. 나에게 너의 솔로모니쉬가 그런 것처럼.
언젠가 이야기했었지? 너는 절대로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야. 세상에는 너처럼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그 중에는 너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그게 나라는 말을 좀 더 일찍 하지 못해 미안하다.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게 되어 정말로 유감이구나.
아까 점심때 내 정체가 발각되었으니 즉각 피신하라는 지령을 받았단다. 이미 경찰이 왔다 갔니? 블라우하임 부인(주여, 그 분의 영혼을 축복하소서!)의 보석함이 사라진 걸 발견했나 모르겠구나. 손버릇이 나쁜 프랑스 여자 행세를 하려고 내가 가져간다. 어차피 내일 블라우하임 박사가 베를린에서 돌아오면 다 들통날 사소한 공작인데, 어머님의 유품을 멋대로 다루어서 미안하구나.
그래, 블라우하임 박사가 내일 돌아온다고 했어. 열흘 동안 아넨에르베 본부에서 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과학자 몇 명과 SS가 동행할 예정이라고 하더구나. 이제 네 어머님도 계시지 않으니, 그 미친 과학자가 이번에는 네게 무슨 짓을 할지 상상도 가지 않아. 그러니 안나마리, 나와 함께 떠나지 않겠니?
난 널 지키고 싶구나. 널 사랑해. 네 어머니 대신은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모나 언니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네 아버지라는 작자의 집, 네가 폰 블라우하임의 이름을 쓰는 이 군국주의 망상병 환자들의 나라가 아니라면, 너는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면서, 소중한 것을 훨씬 더 많이, 더 솔직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안나마리, 나와 함께 영국으로 가자. 휴 삼촌을 만나게 해줄게. 함께 콘월의 바닷가를 거닐고, 핑크색 제라늄을 정원 가득 심고, 같이 머핀을 만들고, 네가 좋아하는 개를 여러 마리 기르면서 함께 살 수 있어. 자정까지 떡갈나무숲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기다릴게. 언젠가 같이 발견했던 버려진 새둥지 기억 나니? 네가 오지 않는다면 거기 어머님의 보석함을 두고 가겠어. 와 주렴, 안나마리. Ma cher petit, 너에게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부디 와 주렴. 기다릴게, 제발. 내게 널 지킬 기회를 주렴.
- 헬렌 싱클레어, 너의 엘레느가.
***
1930년 11월 7일.
자정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겠다.
나는 아무나 치면 울리는 쇠가 아니야.
아버지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
탕!!!
총성은, 그 소리가 극적으로 울리도록 의도적으로 길게 끌린 침묵 끝에 들려와, 더욱 요란하고 날카로왔다. 안나마리는 마치 뺨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녀 앞을 굳건히 막아서고 있던 엘레느의 뒷모습이 서서히 허물어지며, 아직도 총연이 피어오르는 권총을 겨누고 있는 울베르트 폰 블라우하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선생님?!"
"안...나...마리..."
털썩. 엘레느가 아직 서리도 녹지 않은 차가운 땅바닥에 무릎을 부딪히며 쓰러졌다. 안나마리는 다급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수수한 갈색 트위드 여행복의 가슴팍에 생긴 짙은 얼룩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선생님...안돼요, 선생님...선생님!!"
"..."
엘레느가 소리없이 입술을 움직이자 입꼬리를 따라 선명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안나마리의 뇌리에 울렸다.
-달아나거라, 어서.
"선생님...?"
-괜찮아, 이 숲만 벗어나면 국경이야. 휴 삼촌이 기다리고 계셔. 어서, 달아나.
"안돼요, 선생님을 두고 갈 수 없어요!"
-가야 해. 약속했잖니, 행복해지겠다고, 나에게 널 지킬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아악!!
탕! 탕!!
연달아 울린 두 발의 총성에 엘레느의 몸이 격하게 튀었다. 직접 머릿속에 울리던 소리였기 때문에 갑작스런 격통에 비명을 참지 못한 것이다. 그녀를 끌어안은 안나마리의 안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엘레느 한 사람을 겨냥한 악의 어린 저격이었다.
"저열한 이등국민 주제에, 그동안 봐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내 딸을 유괴하려 들다니."
블라우하임 박사가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느랗게 뜨며 엘레느를 노려보았다. 경멸과 혐오의 빛이 역력한 시선이 딸의 가정교사와, 딸을 아울러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이쪽으로 오너라, 안네 마리아. 더 이상 반항은 용납하지 않겠다."
"나...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다고 말할까? 그럼 선생님을 살려줄까? 응급치료를 해야 하는데, 나, 나에게는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 같은 건 없는데, 병원에, 아니, 아버지가 의사잖아, 지금이라도 치료를, 내가 돌아갈 테니까, 제발, 누구라도 좋아, 아버지라도, 상관없어. 빨리, 선생님을, 도와줘요, 난 아무래도 좋으니까, 선생님을, 선생님을...!
"당장 이리 오지 못하겠느냐? 계속 반항한다면 정말로 따끔한 맛을..."
크르르르릉-
야성의 적의가 선명한 목울림이 블라우하임 박사의 목소리를 끊어냈다. 안나마리는 블라우하임 박사 못지 않게 놀란 눈으로,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가로막은 짐승을 바라보았다. 죽은 줄 알았던 라임이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하들에게 쫓겨 함정으로 몰리는 짐승처럼 들어오게 된 슈바르츠발트의 숲속에서 만난, 품종도 알 수 없는 잡종개. 먹을 것을 주고 조금 놀아줬더니 안나마리가 마음에 든다며 숲에 있는 동안 동무를 해주겠다던 잔망스러운 여자아이. 개의 예민한 후각이 좁혀오는 포위망을 발견한 것은 엘레느가 서리 내리는 아침에 만났으니 '라임(Rime)'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직후였다. 용맹하게도 아버지의 부하를 습격해 쓰러뜨려 주었지만, 블라우하임 박사는 사격의 명수였다.
마치 조금 전의 엘레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앞을 막아서는 라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나마리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버지가 든 권총은 6연발이고, 라임에게 두 발, 선생님에게 세 발을 쐈으니까, 지금 남은 건 한 발. 라임이, 라임이 그것만 막아준다면,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야, 이건? 아직도 안 죽었나? 잡종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질기기 그지없군. 아무리 내 딸이지만, 순수한 아리아인의 혈통을 가지고 고작 하는 짓이 짐승을 부리고 이등국민과 놀아나다니, 수치를 모르는 천것 같으니. 꼭 지어미를 닮아서..."
"닥쳐!!"
커어엉!!!
탕!
듣다 못한 안나마리의 절규와 라임의 포효가 거의 동시에 울리고, 한 발 늦게 총성이 울렸다. 귀를 막은 채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던 안나마리는, 총성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손목을 움켜쥐고 쓰러진 블라우하임 박사와 박사 위로 올라타고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하얀 송곳니를 드러낸 라임을 보았다.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마, 더러운 냄새가 나는 두발짐승아!! 머릿속에 라임의 외침이 아플 정도로 차갑고 깨끗하게 울려 퍼졌다. 이 여자사람은 우리 엄마야, 이제부터 우리 엄마야. 너 따위는 꺼져, 죽어버려, 더러운 두발짐승!!
"이...이...개새끼가..."
철컥.
"안돼, 라임! 돌아와!!"
안나마리가 외치자마자 라임이 몸을 날려 블라우하임 박사에게서 멀어진 다음 순간, 박사의 품속에서 뭔가 기묘하고도 불길한 쇳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철컥, 딸칵, 펑.
"으아악!"
일련의 쇳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블라우하임 박사의 비명은 더욱 날카롭고 기괴한 것이었다. 자신의 품속에서 김새듯 희미한 소리와 함께 팽창한 무언가를 라임에게 끼얹는 대신 자신이 뒤집어쓴 남자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비명과 신음을 거듭 되풀이하며 비틀비틀 몸을 굴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해 멍하니 아버지가 사라진 숲을 바라보던 안나마리의 품속에서,
-휴 삼촌...
"선생님?!"
엘레느의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안나마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들 곁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벌써 땅거미가 내려 어둑해져서인지 그녀들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나마리가 당황하고 라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리를 살살 흔드는 동안, 남자는 그들 곁에 한쪽 무릎을 꿇고 엘레느 위로 몸을 기울였다.
"무리했구나, 헬렌."
-늦으셨네요...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버틸 수 있겠느냐?"
-글쎄요...괜찮아...울지 마...
힘겹게 이어지던 '소리'는 휴 싱클레어의 뇌리를 휘돌아 안나마리에게 닿았다. 울먹이기 시작한 소녀의 뺨을 따라 굴어떨어진 물방울이 엘레느의 얼굴에 떨어졌다.
"하지만...하지만...나 때문에...선생님이...나 때문에...!!"
-너 때문이 아니야, 안나마리...너를 위해서...내 선택이고...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건...내 권리...
"그만, 능력을 더 쓰는 건 위험하다."
-휴 삼촌, 안나마리를...
"헬렌."
-안나마리를...울리지 마세요...늘 안아주고...웃게...소중한 것을 많이...만들 수 있...게...
"...선생님?"
엘레느 - 헬렌의 '소리'가 멎었다. 끄응- 다가온 라임이 그녀의 피묻은 뺨을 살짝 핥았다. 하지만 헬렌의 눈은 감긴 채로, 희미하게 미소를 그린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나마리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다랗게 뜨여진 채, '선생님' 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목구멍에 틀어막힌 무언가가 당장이라고 터지고 찢어져 솟구칠 것 같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기 시작하는데,
"안나마리."
두툼한 어른 남자의 손이 그녀의 머리에 얹혔다.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뻣뻣이 굳은 어깨를 토닥였다.
"일어설 수 있겠니?"
"...저...저는...선...선생님이...저..."
"차를 숲밖에 대어 두었다. 헬렌을 데리고, 국경을 벗어나야 해. 블라우하임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안전한 곳으로 헬렌을 데려가야 해. 일어설 수 있겠니?"
'휴 삼촌'의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준엄했다. 안나마리는 다시금 품속에서 고요하게, 마치 잠들듯 평온해 보이는 헬렌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한 끝에, 겨우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을 낼 수 있었다. 끄응끄응- 라임이 재우치듯, 격려하듯, 그녀에게 두툼한 등짝을 들이밀고 머리를 부볐다.
"선생님...선생님을 안아 주세요. 저는 할 수 없어요...흔들리지 않게, 많이 아프실 거에요..."
"음, 내가 힘이 좀 세지. 헬렌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더냐?"
'휴 삼촌'이 넉살좋게 웃으며, 축 늘어진 조카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일어났다. 뒤따라 일어나려던 안나마리는 무릎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 했지만, 라임이 재빨리 머리를 들이대 그녀를 부축했다. 고마워, 라임. 별말씀을, 울지 마, 엄마, 힘내, 걷자, 나 걷는 거 좋아해. 엄마가 웃는 거 좋아해. 있잖아, 어서 선생님이 말한 베이컨이라는 거 먹어 보고 싶어. 엄마는 배 안 고파? 선생님이랑 같이 커피라는 거 마시고 싶다고 했지?
"응...머핀도. 바닷가도, 핑크색 제라늄도..."
선생님하고 약속했으니까, 먹을 거야. 보러 갈 거고, 거닐 거고, 웃을 거고, 울 거고, 소중한 걸 잔뜩 만들 거고, 절대로 행복해질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선생님, 제 곁에 라임이 있어요. 휴 삼촌을 만났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한 번만 더 웃어준다면, 한 번만 더 안아준다면, 한 번만 더 입맞춰 준다면, 저는 좀 더 쉽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한 번만, 한 번만 더...!!
***
1932년 6월 18일, 영국 남서부 콘월, 실리 제도의 어느 섬.
"말리셔도 소용 없어요. 저한테는 행복해질 권리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킬 권리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신 건 바로 선생님이시잖아요."
-네가 위험해지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제가 이렇게 고집쟁이인 줄 예전에 몰랐다고 말씀하실 차례죠, 이젠?"
-메어리 앤 입스위치!
"식어요."
-뭐?
"선생님이 그렇게 풀네임을 부르실 때는 잔소리를 시작하시겠다는 거잖아요. 저 머핀 구워왔단 말이에요. 이제야 겨우 사람이 먹을 만한 게 만들어졌는데, 식어버리면 또 무슨 맛으로 변할지 모르거든요."
-보통 머핀이라는 음식은 식는다고 맛이 그렇게 심하게 변하지는 않아.
"제가 만드는 건 보통 머핀이 아니라 괴물 머핀이라 그런가부죠."
-얘가 점점! 휴 삼촌한테서 넉살 좋은 것만 배웠니?
"저 원래 넉살 좋았어요. 계발이 덜되서 그렇지."
태연히 자신의 유년기를 싸잡아 부정하며, 안나마리는 병상의 사이드 테이블 위에 싱싱한 데이지꽃을 곁들여 정성껏 포장한 머핀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풀 생각은 없었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살며시 닿도록 주의깊에 창가에 배치된 병상에 누운 여성은, 머핀을 먹기는커녕 눈꺼풀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으니까. 병상 위로 훌쩍 뛰어오른 라임이 발치에 실꾸러미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고, 마지막 세균 한 마리까지도 박멸할 기세로 간호사들이 박박 소독한 발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킁킁 냄새를 맡다가 맹렬하게 핥기 시작했다.
-라임더러, 간지러우니까 내 발등 위에서 탈탈거리지 말라고 전해줄래?
"직접 말씀하시지 그러세요?"
-네 개잖니.
"선생님 드릴까요? 곁에 두면 심심하지는 않으실 텐데."
-네 동반자인 걸. 없으면 울다가 잠도 못들 거면서. 나는 네가 잊을만 하면 쳐들어와서 귀가 아프도록 떠들다 가는 걸로 충분히 심심파적이 된단다.
"저 뭐부터 상처받을까요? 울어요? 잊어요? 아파요?!"
-머핀, 식기 전에 먹으렴.
"혼자 먹으면 맛 없는데요."
나 먹을 수 있어, 먹을래, 먹을 거야! 왜 이번에는 나 하나도 안 줘? 전에 구운 건 다 나 줬잖아!
"라임!"
-맛있었니, 라임?
응! 굉장히 특이한 맛이 났어! 엄마가 만드는 머핀 같은 맛이 나는 건 또 없어! 어제도 다섯 접시나 먹었어! 근데 여섯 접시째는 나 안줬어!
"라임! 이 고자질쟁이가!"
응? 고자질? 뭐가? 엄마가 선생님 앞에서는 착한 개가 되라고 했잖아? 라임 착한 개인데? 솔직한데?
크림색 곱슬털이 보들한 스파니엘 잡종개가 견주의 머리칼과 같은 밤갈색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견주와 견주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안나마리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물들었고, 헬렌 싱클레어의 '소리'가 명랑하게 웃었다. 뭐라고 화를 내야할지 몰라 씩씩대던 안나마리가 이윽고 어깨에 힘을 빼더니 웃기 시작했고,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소리, 하지만 그 모든 소리가 들리는 라임은 엄마와 엄마의 '선생님'이 웃는 것이 기뻐서 꺄르르 꺄르르 떠들다가 결국 달려온 간호사에게 짐승은 조용히 하라며 야단을 맞았다.
런던 테임즈 강가에 본사를 둔 다이스 앤드 선(Dice & Son) 국제무역회사에 2년 전부터 견습사원으로 일하던 메어리 앤 '안나마리' 입스위치가 정식 사원으로 임명되어 T의 코드네임을 받은 지 며칠 뒤, 그녀의 18번째 생일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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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포스트 리플레이가 끝났다! 순식간에 안나마리의 과거가 밝혀졌군요. 어릴 때는 그래도 제법 순진하고 순수하고 연약하던 안나마리였습니다, 믿거나~말거나~
생각해보면 헬렌 선생님도 오버드니까 죽을 리가 없는데(그 와중에 설마 침식률이 100% 넘지는 않았겠...지?;;;) 리저렉션에 너무 턴을 소비하신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