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
그날 밤, 잘 준비를 마친 아샤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개에게 말을 건넸다. 침대 옆 바닥에 놓인 상자 안에서, 개가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뒤채며 끙끙대고 있었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제일 큰 상자였지만 그에게는 좁아 보인다. 하긴 대형견의 강아지라도 놀랄 정도로 뼈대가 굵고 큼직큼직하니까. 그보다 더 작아지는 건 무리였나 보다.
“내일 더 큰 집을 만들어 줄게. 다른 애들도 찾는 거 도와준댔어.”
아니,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는 건 사양하겠다. 강아지의 눈이 단호하게 빛났다. 로베일라가 금지하고 아샤가 필사적으로 보호했지만, 호기심에 충만한 열두 명의 아이들이란 실로 무서운 존재였다. 오리카와 겨우 귀가한 유노아 부인이 가세하고도 소란은 가라앉지 않아, 로베일라가 실로 천둥의 여신 같은 호통을 친 다음에야 겨우 조용해졌다. 물론, 그 전에 강아지가 다 낫거든 같이 놀게 해주겠다는 아샤의 약속이 있었으니 가능했겠지만.
“우리 원장님 굉장하지? 그렇게 심하게 다쳤었는데, 벌써 많이 나았잖아.”
원래 병상이었던 철제 침대는 어른에게도 높다. 아샤의 별로 길지 않은 다리는 허공에서 달랑달랑 흔들리기 마련이다.
“난 도미나토가 싫지만 원장님이나 오리카 언니는 싫지 않아. 도미나토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 된다면 치유능력이 좋아.”
아샤는 고개를 젖힌다. 비가 내린 다음이라, 흐린 천창 너머로 놀랍도록 깨끗한 밤하늘이 비쳐 보인다. 보름이 가깝게 부풀어오른 달빛이 천창 바로 아래 놓인 침대 위로 쏟아진다.
“사실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싶은데, 그런 능력은 없댔어. 그럼 나한테 치유능력이 생기더라도 소용없는데 말이야. 어차피 치유능력의 A레벨 도미나토라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걸. 베스티아의 신녀라도 그것만은 못할 거랬어.”
아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고 아샤를 쳐다보다가, 아이가 뒤로 털썩 눕는 바람에 무방비하게 벌어진 잠옷 자락에 기겁하고 시선을 돌린다.
“불공평하지 않아?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는데.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치유능력만 있으면 감쪽같이 고칠 수 있는데. 왜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을까?”
한때 공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은 죽는가? 왜 죽이는가? 왜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가? 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면 안 되는가?
“아?”
발끝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온기에 아샤는 얼굴을 덮은 손을 치운다. 젖은 손바닥을 잠옷에 문질러 닦으며 일어났더니, 발치에 앉은 강아지가 올려다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보란 듯이 발등을 핥는다.
“우왓, 간지러! 그러지 마, 간지럽단 말야!”
핥은 발을 침대 위로 끌어 올리자 다른 발을, 그 발도 끌어 올리자 이번에는 침대에 앞발을 대고 서더니 손을 핥는다. 사정없이 핥아대는 축축하고 따뜻한 분홍빛 혀에 견디지 못한 아샤가 꺄르르 웃으며 강아지를 덥석 끌어안았다. 깜짝 놀란 강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더 웃겨서, 두툼한 가슴팍을 꼭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군다.
“아하하...하하...너 정말 상냥하구나. 강아지인데 벌써 이렇게 무겁고.”
실례다. 겨우 아샤의 품을 벗어난 강아지가 뚱한 얼굴로 돌아앉는다. 이제 다 이루었다는 듯 침대에서 내려서는 모습이 다친 것 같지 않게 늠름하다. 꼭 그만큼의 온기가 들었다 난 자리가 서늘하여, 아샤는 불쑥 손을 내민다.
무-멍!!!
강아지가 제법 그럴듯하게 짖었다. 아샤가 허리를 끌어안고 들어올린 것이다.
“같이 자자.”
끄으응-
“원장님한테는 비밀이다?”
아샤는 키득키득 웃으며 강아지를 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달빛이 밝아 전등도 켜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 써도 얄팍한 천을 투과한 빛이 곤란한 듯 눈을 껌뻑이는 강아지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렇게 끌어안고 자기 좋을까. 둘러 감은 손끝에 우툴두툴하게 상처가 드러난 맨살이 닿는다.
“다 나으면 여기도 털이 자랄까? 흉터가 안 남으면 좋겠는데. 너도 흉이 지는 거 싫지, 개야?...개야, 라고 하니까 웃긴다.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아샤는 강아지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아까 더운 물수건으로 부지런히 닦아준 털은 까스스하게 말라 쿰쿰한 냄새가 난다.
“강아지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건지 모르겠어. 혹시 너한테 이미 이름이 있으면 어쩌지? 말할 수 있으면 물어보겠는데. 우와, 너 가슴털 되게 부들부들하다. 다 새까만데 여기만 흰색인 것도 신기해. 꼭 저기 밤하늘의 달님 같아.”
끼잉- 강아지는 불편한 듯 소리를 내며 아샤의 손길을 피한다. 무심코 만져본 보드라운 터럭이 아쉽기는 해도, 아샤는 순순히 손을 치운다.
“건드리는 거 싫어? 아픈 건 아니지? 이제 안 할게.”
그러더니 이번에는 두 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감싼다. 쫑긋 선 귀는 판판하고 서늘하며 바지런하게 난 솜털이 보드랍다. 강아지도 귀를 만지는 손길은 기분이 좋은지 나른하게 늘어진다.
“있지, 너는 살 거야. 나도 살았으니까.”
아샤는 품에 안긴 강아지의 머리 너머로 방 한구석에 고인 어둠을 응시한다. 제 것이 아닌 체온과 숨결과 고동은, 지난 5년 동안 밤마다 두려워하며 직시하기를 거부했던 어둠조차 마주볼 용기를 준다. 뺨을 적시는 눈물의 색깔마저 오늘밤은 다르다.
“유노아 아줌마가 아이들은 감자나 토마토보다 훨씬 말을 많이 걸어줘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오리카 언니는 늘 우리한테 말을 걸어줘. 하지만 있잖아...”
아샤는 강아지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이는 자기가 그나마 운이 좋은 줄 안다. 부모를 잃었을 때 아버지의 동료인 라실 피올린의 보호를 받았던 것도, 그의 손에 이끌려 제3고아원에 온 것도, 열세 살이 되도록 머무를 수 있는 것도 모두 바라기 어려운 행운이었다. 그래서 아샤는 차마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단 말을, 오늘 처음 만난 생명체에게 속삭인다. 그 작은 귓불 밖으로도 새어나가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맙소사. 강아지는 난처해 한다. 하지만 소녀의 속삭임은 주박처럼 검은 목덜미를 옭아맨다. 지독한 함정이지만 안온하여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
“내일 아침에 이름을 지어줄게. 너한테 어울리는 걸로. 그러니까...오래오래..같이...응...”
아샤는 하루 종일 많은 일을 겪은 아이답게 까무룩 잠이 든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품 안에서, 강아지는 실로 개답지 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