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샤는 올 때의 큰길과는 다른 길로 돌아갔다. 라실이 하는 일인 만큼 아까 그 아이들이 보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폐공장 단지의 무수한 지름길 중 하나를 선택했고, 그 충동적인 결정의 결과라면 운명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르르르르-
비가 거의 그쳐 우산을 접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끝까지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막힌 길처럼 보이는 길을 걷던 중 들려온 소리. 만약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라면 경계심을 품고 도망쳤겠지만, 아샤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지 못했다. 호기심을 품고 소리를 따라갔다.
그륵-그르르-그르르-
소리는 무너진 건물과 버려진 기계 틈바구니에서 들려왔다. 부서진 합판과 녹슨 공구, 산업폐기물이 얼기설기 얽힌 좁은 공간에 동굴처럼 빠끔히 열린 입구는 축축하게 젖은 어둠을 잔뜩 품고 있었다. 아샤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먹구름 낀 하늘, 흐린 날빛, 좁은 골목길, 켜켜이 쌓인 파편 아래는 바다 밑바닥처럼 어두웠다.
“너…누구야?”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처럼 가장 어두운 구석에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좁은 공간에 모두 구겨 넣지 못해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두툼한 발이 네 개. 그늘 아래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 위로 유리알처럼 새파란 눈이 인광을 발한다.
“개야? 너, 개구나?”
아샤가 앉은걸음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파란 눈이 가늘어지며 이빨이 더 드러난다. 그르륵 소리가 깊어지고 그림자가 일렁이자, 폐자재 더미에서 울컥 넘친 물줄기가 선명한 붉은색을 띄고 그 아이의 발치까지 흘러내렸다.
“다쳤어?”
위하여 변명하자면, 아무리 아샤라도 개가 자기 말을 알아듣고 대답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다. 채마밭을 가꾸는데 열성적인 보모 유노아 부인이 늘 고구마와 토마토에게 말을 걸면서, 식물도 사람이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면 좋아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을 뿐이다. 저것이 개라는 동물이라면, 토마토보다는 좀 더 말을 잘 알아듣지 않을까?
“있잖아, 좀 더 가까이 갈게. 해치지 않아. 잘 안 보여서 그래.”
아샤가 또 한 걸음 다가간다. 그르릉- 목울림이 끊어졌다. 두 걸음, 세 걸음. 아샤는 핏물이 고인 어둠 속으로 들어선다.
“다쳤구나.”
그것은 죽어가고 있다. 열세 살 소녀가 무릎을 꿇으면 바닥에 누인 머리와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거대한 짐승이, 옆구리가 크게 찢어진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많이 아파? 난 도미나토가 아니라서 치유능력이 없어. 미안해, 개야.”
당연하게도, 그것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눈을 크게 뜨고 아샤를 바라본다. 인광이 사그라진 눈은 새벽하늘처럼 짙은 감색이다.
“나 바로 이 앞에 살거든. 나랑 같이 갈래?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줄게.”
그것은 목을 울렸다. 사람이라면 코웃음이라고 해도 좋을 소리다. 하지만 아샤는 개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다. 늑대는 더더구나 삽화로 본 게 전부다. 오늘 점심나절까지만 해도 그랬다.
“좋아? 다행이다. 그럼 넌 다쳐서 아프니까, 내가 안고 갈게.”
아샤는 우산을 접어 한쪽에 세워뒀다. 내일 잊지 말고 가지러 오기를.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춘다. 검은 덩어리 아래 손을 밀어 넣는다.
“너 좀 크구나. 내가 안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야.”
크릉! 그것이 비명처럼 입술을 뒤집는다. 고구마나 토마토보다는 적극적인 반응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아샤는 입술을 앙다물고 그것을 들어올리려고 노력한다. 손과 팔이 맞닿는 곳에서 어둠색 모피 아래 물결치는 근육을 아픔이라고 착각한다. 아샤가 저를 들어올리려 노력하는 동안, 그것은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비명을 꾹꾹 눌러 참으며 제 몸을 줄이고 또 줄인다. 차라리 옆구리를 잡아뜯길 때가 덜 아팠던 것 같다.
“됐다! 너 보기보다 가볍구나. 상처 치료하고 나서 밥 줄게. 배고프지?”
제 품에 가득 차는 검은 강아지를 간신히 끌어안은 아샤가 만족스럽게 속삭인다. 그것은 뺨을 비비려는 소녀에게 질겁해 고개를 돌렸다가 소녀의 품에 코끝을 묻고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상처가 당겨 끄으윽 신음을 흘린다.
“금방 도착해. 조금만 참아, 착하지?”
자신의 추태에 축 늘어진 검고 쫑긋한 귀에 속삭인 아샤가 종종걸음으로 고아원을 향해 달려간다. 막 그쳤던 비가 다시 폭우로 바뀐 것은 그 아이가 뒷문으로 뛰어든 직후였다. 기상관리국의 일직 강우관은 오늘 총령궁에 지펴진 불을 끄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부서진 총령궁의 일각에서 흘러나온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비를 내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의 판단은 옳았고, 그 덕분에 검은 짐승이 남긴 흔적은 아샤의 피묻은 작은 발자국과 함께 완전히 지워졌다. 감응능력의 도미나토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고 선언하고 그 자리를 떠났으며, 아무도 아샤가 가지러 오는 것을 잊어버린 우산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