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구립도서관 대출에 재미가 붙던 찰라 눈깜짝할 사이에 백수가 되고(...) 기왕 백수가 된 김에 이번 분기 우량대출회원에 도전하는 중. 목하 구립도서관 일본소설 서가를 작파중인 건 자랑인데 감상문이 월 단위로 밀린 건 안 자랑OTL
(아래 2월 감상문이랑 붙여 쓰다가 분량이 꽤 많아서 포스팅을 따로 함니. 예정대로라면 3월 말에 이 분량만큼 한 번 더 해야겠지만 :)
<고양이는 알고 있다> 니키 에츠코 저, 한희선 역, 시공사
일본 근현대소설을 읽을 때 시간적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나중에 감상이 미묘하게 변색된다. 무슨 소린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소설의 배경을 '지금'으로 생각하고 읽다가 알고 보니 출판 연도가 1950년대라든가, 작중 배경이 2차대전 직후라든가, 더 내려가 1차/2차대전 사이라든가(위어드 에이지인가!), 뭐 그렇게 알고 나면 활자에서 연상했던 광경이 확 달라진다는 이야기. 나만 그런가? ㅋ
이 책도 1956년 발표된 작품인 만큼 시대 배경은 1950년대 초인 듯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가다가 작중에 2차대전 당시 공습 피난에 사용된 방공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현대물이라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공습 운운하는 바람에 읭? 했었다. 아, 어려워.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한국인인 이상 세계대전 당시 일본 사회에 관심 갖는 건 별로 유쾌하지도 않고.
...라고 작품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아 봅니다. 왜냐하면! 읽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감상이 별로 없어서...깔끔하게 잘 맺어지는 이야기이긴 했는데, 재밌었던 걸로 기억하고, 근데 뭔가 딱 맺을 말이 없다. 그냥, 가볍고 바삭바삭한 이야기에 비해 범인이 좀 불쌍하달까, 뭐 그런...
<월식도의 마물> 다나카 요시키 저, 김윤수 역, 들녘
작가가 다나카 요시키길래 읽었는데 삽화가 무쟈게 귀여웠다(...)
<에이트> 이래 역사에 실존하는 위인들을 은근슬쩍 캐릭터로 끼워넣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에 등장한 디킨스와 안데르센이 너무 귀엽다! 이래 놓고 맥널리 시리즈를 읽으면 아버님의 귀여움도 덩달아 두 배! 이것이 크로스오버 버프!! (...야;)
첫 챕터에서 아마 진상은 xxxx이나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였다. 그것도 참 그리운 무언가가 등장하는 그거...최근에 모 소설을 읽어서 또다시 크로스오버! 애초에 다나카 요시키 저서를 읽으면서 뭔가를 바라는 건 독자의 예의가 아니지요. 그냥 가볍고 유쾌하게 읽었음. 하지만 굳이 배경이 되는 섬 이름을 월식도로 적은 건 작가의 고집인가 역자의 선택인가, 조금 궁금해졌다능 :3
<오늘의 레시피> 다이라 아스코 저, 박미옥 역, 문학동네
각각의 레시피마다 말랑말랑한 연애담을 엮은 에피소드 모음집. 요리 중에 버터밥이 있길래, <심야식당>에서 감명 깊게 본(!) 버터라이스가 생각나서 빌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백수 1주차의 몇 끼니를 버터라이스로 해결했다 /낄
딱히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그런 연애 이야기. 근데 그게 참 말랑말랑하고 달콤해서, 한밤중에 맛집 기행 포스팅을 읽는 심정으로 그냥 읽어치웠다. 세상 다 그런 거지 뭐 :3
<스코틀랜드야드 게임> 노지마 신지 저, 금정 역, 스튜디오본프리
추리소설인 줄 알았는데 연애소설이었음=ㅅ=
읽으면서 스위츠가 고프게 만드는 나쁜 소설. 쇼콜라윰의 살구쨈 하트를 품은 여자애 쿠키가 딱이다. 흥이다, 그러니까 결국 삐-란 말이지. 쿠키를 아주 우적우적 쳐묵해줄 테닷!
근데 이제 보니 역자가 금정 씨였어. 어쩐지, <원피스>라든가 서브컬쳐를 언급하는 부분이 스무스하게 넘어가더라니(...)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윤옥 역, 현대문학
나처럼 끝까지 범인이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한 둔탱이 독자를 위한 권말 해석까지 첨부한 친절한 책OTL
가가 형사 시리즈라는데 정작 주인공은 가가 형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오빠. 일본 현지에서 이 두 사람 엮은 부녀자가 있을 거라는데 내 왼손 모가지와 <스코틀랜드야드 게임>을 읽으면서 쳐묵하고 남은 잼쿠키를 건다!
<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저, 백은실 역, 한길사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아줌마는 진짜 역사동인녀다. 나 같은 글쟁이의 번데기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장대한 스케일과 거침없이 양지로 치받는 뻔뻔함을 구비한 걸출한 동인녀야.
그나마 <르네상스의 여인들>은 무난하게 읽었는데, 물론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한 장편은 하나도 안 읽었지만; 이 <살로메 유모 이야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너네 우민들은 xx라고 알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은 나만은 ##라는 걸 알고 있단 말씀이야, 풉!" 같은 화법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조곤조곤한 말투로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모르셨군요?"를 함의한 에피소드가 몇 개씩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자기 이름까지 등장해 버리면, 천 년의 사랑은 식지 않을지 몰라도 나처럼 원래부터 몇 발짝 멀리서 흰눈으로 보던 독자는 더더욱 멀어진다고. 농담도 재미있을 때 먹히는 거지, 진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뭐 어쩌라고..." 그런 기분이었, 아놔.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카즈키 저, 박수지 역, 노블마인
하도 서적 정보를 많이 접하다 보니 잠깐 혼선이 있었나 보다. 그나마 히가시노 게이고랑 히라노 게이치로는 비슷하기라도 하지, 어째서 사쿠라바 카즈키와 우타노 쇼고를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소녀와 벚꽃의 이미지 때문인가;
아무튼 <고식>을 3권인가 읽다 때려친 뒤로 사쿠라바 카즈키는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 맞더라. 격하게 싫다는 건 아닌데, 그냥 이 사람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 반전에서 모든 복선이 해명되기는커녕 '그래서 도대체 시즈카는 왜 삐-한 건데?' 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애초에 그 반전이 아니었으면 제기되지도 않았을 의문인데;) 끝까지 읽고 났더니 프롤로그나 작품명이 너무 겉멋을 부린 것 같아서 민망할 정도다. 주인공들이 중학생이니 중이하다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애초에 사쿠라바 카즈키도 중학생도 나랑 안 맞아. 나 이래서 라노베 쓸 수 있을까 OTL
<팔묘촌> 요코미조 세이시 저, 정명원 역, 시공사
권말 해석을 보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너무 유명해서 제목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적은' 고전이라고 하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김전일 봤지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 핫핫.
배경이 되는 팔묘촌의 유래부터 시작해서 읽는 내내 김전일의 참수무사 에피소드가 떠올라 집중이 잘 안됐다. 그나마 <점성술 살인사건>은 덕분에 범인이고 트릭이고 초장부터 다 알아차렸는데! 이 작품은 거기까지는 아니었다는 거. 뭐, 트릭 한두 개가 겹치긴 했지만; 긴다이치 다른 책에서도 이러면 뭐, 손자보다 할아버지를 먼저 영접하지 못한 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
<인형 탐정이 되다>
<인형은 잠들지 않아> 아비코 타케마루 저, 최고은 역, 북홀릭
가볍고 귀여운 단편집일 것 같아서 빌려왔는데 역시 그랬다. 구립도서관 책들은 다 겉표지를 벗겨내서; 시리즈 1권과 3권인 걸 모르고 걍 빌려왔는데 아직 2권은 못 빌리고 있...뭐, 안 봐도 상관없는 단편집이니까. 살인사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탐정은 시건방진 인형과 소심한 복화술사와 활기찬 유치원 여교사의 조합. 여기서 복화술사 조수가 빠지고 인형이 사람이었으면 <Q.E.D.>고 인형이 빠지고 복화술사가 영리했으면 <C.M.B.>이빈다. 오오미, 카토 모토히로 돋는거.
작가 아비코 타케마루가 사운드 노벨 <카마이타치의 밤> 시나리오를 썼다길래 굉장하잖아! 생각했는데, 후기라든가 권말 해석을 보면 서브컬쳐에도 굉장히 강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거 치고는 번역자가 일본 서브컬쳐를 너무 모르는 티가 나서 좀 짜증이 난달까, 주변에 우월한 번역자가 있어서 그런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번역자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말 싫다. 한국어도 잘 해야 하고, 그 이상으로 번역 대상이 되는 문화도 알아야 하거든요. 게다가 센스와 노력도 필요하고 말이지.
(아무리 내가 번역자의 번데기도 되지 못한 일개 독자라지만,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을 오마쥬했다"라고 적어줬는데 그걸 '트럭 위드워즈 클럽'이라고 적은 건 너무하지 않나? black widowers가 truck widows가 된 거잖아; 그리고 1995년에 출판된 책에서 1994년에 나온 게임을 '최신'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2009년에 낸 번역본에서 역자주 하나 달아 주지 않는 것도 좀 무성의한 거 같...네, 제가 바라는 게 많습니다=ㅅ=)
<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타케마루 저, 윤덕주 역, 한스미디어
헐...뭐야, 이런 결말도 가능해?! 좋은 의미로 뒤통수를 맞았다. 사운드 노벨의 기념비적인 작품의 시나리오 라이터라는 필모가 빛난달까. 과연, 그런 경력이 있으니 이런 걸 쓸 수 있지, 싶다. 같은 맥락에서 굉장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살육에 이르는 병>도 기대중.
<롱 도그 바이> 가스미 류이치 저, 권남희 역, 새앙뿔
(작중에 이전 애로우가 이전 해결한 사건들을 언급하길래 시리즈가 몇 권 더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것도 번역이 안된 게 아니라 아예 없...작가님 이렇게 소녀 마음을 멍때리시면 안됩니다OTL)
<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저, 김소연 역, 북홀릭
재밌을 거 같아서 빌렸는데 과연 재밌다. 책 소개를 읽고 예상했던 딱 고만큼의 이야기.
난 아무래도 코믹하게 희화된 고난 속에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인간군상을 그린 일본 드라마가 취향인 듯 하다. 뭐, 대수사선 때부터 다져진 일드 감각이지요. 그런 것 치고 마지막 한 장이 좀 씁쓸하긴 한데, 현실이라는 게 그런 거지 뭐. 근데 이 소설 원작으로 드라마 안 만들었나? 만들었으면 딱일 것 같은데. 신지 역에 쟈니즈 계열 아이돌 가수라든가 :3
<탐정 갈릴레오>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억관 역, 재인
뒤늦게 히가시노 게이고 붐에 편승한 곰은 이제야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를 접합니다. 뭐, 남들 다 재밌다고 하는데 내가 뭔 말을 덧붙이리. 매 편마다 작정한 듯이 현대과학과 산업기술의 정수를 들이대는 바람에 트릭이고 뭐고 전혀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예지몽>이나 '그' <용의자 X의 헌신>을 봐야겠습니다. 아이고, 읽을 책이 많아서 좋구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