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자승우가 뛰어난 배우라는 사실에 상당히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그 친구의 문제가 연기 외적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안티 퍼슨은 아닌지라 참는다 (장하다 -ㅅ-)
하지만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딱 하나만은 딴지를 걸지 않을 수가 없다.
...“조승우 같은 뮤지컬 배우가 10명만 있다면 우리나라가 당장 세계 뮤지컬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텐데…”라는 기대 섞인 한탄이 뮤지컬계에서 나올 정도다...
내가 뮤지컬 공연 관계자가 아니라서 주먹구구로 계산해봐도, 6월 현재 서울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이 50여 편, 그 중 넌버벌이나 내한, 어린이 뮤지컬을 빼도 30여 편은 된다. 그 전부가 스타 배우가 주연으로 뛰어줄 무대는 아닐 테니, 그중 1/4 만 대극장 규모라고 치자. 그래도 일고여덟 편은 된다. '조승우 같은' 배우가 열 명만 있으면? 서울에서 공연하는 대극장 규모의 공연 남자주연은 전부 그들이 맡는다는 이야기다. 120% 양보해서 (아익후 오늘 나 참 착하네) 저 기자가 너무 순수해서 '조승우 같은' = '그 외모에 실력 갖춘'으로 들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순수배양 조왕자 팬덤이 아닌지라 (그리고요즘좀 많이까칠하다젠장먹고사는게다그렇지뭐/먼눈) 이 결과가 그렇게 극락 같지가 않다.
왜냐고?
"스타들 고액 출연료 요구로 티켓 값 상승 같은 부작용 우려, 하지만 그만한 역할을 한다면..."
저 몸값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철저하게 조승우 안티로 돌아섰다. 극장 입장료가 8천원으로 고정되어 있는 영화라면 개봉관 수라든가 개봉 기간이라는 변수라도 있지, 어디까지나 라이브 액션인 뮤지컬은 그게 안된다. 우리 고명하신 '뮤지컬협회'씨 (그러고 보니 저 '뮤지컬계'씨라 형제 아냐? /풉) 가 주장하신 바, 한국에서는 장기 공연도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무슨 수로 스타 배우 몸값으로 바친 돈을 회수할까?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티켓 값'이다.
2004년 <지킬&하이드>의 좌석 등급 중 가장 비싼 것은 R석 9만원, 그러나 곧 프리뷰가 시작될 2006년 공연에서 R석은 10만원이다. 2년 동안 고작 만원 올랐다고? 2006년 공연의 최고 등급 좌석은 VIP석, 12만원 되시겠다. 1년에 만원씩 착실히 티켓값이 오른 셈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누가 좀 티켓 가격 상승이랑 물가 상승 간의 신뢰도 높은 검증 결과를 알려주면 좋게쿠늉 -ㅅ-)
그런 거다. 조승우의 외모와 연기력과 집중력과 기타등등 기타등등을 전혀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는 나로써는, 그가 출연한다는 말은 '표값 올라간다'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다. 물론 소극장 규모의 공연도 있지만, 그거 대안이 아닌 선택의 폭이다. 공연 회당 천만원, 작품당 4억 받는 "너무 비싸서 주연 안 시키면 원가도 안 나올 남자 배우"가 열 명이나 되어서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십만원 단위의 지출을 각오해야하고, 그러다 보니 한 달에 한 편 보는 것도 큰마음 먹지 않으면 안되는 부담스러운 '가진 자들의 도락' - 뮤지컬이라는 서민 장르를 거기까지 격상시켜 놓고, 그리고 세계 뮤지컬 시장의 석권이라?
..대체 뭘로?
아니, 진짜 '뮤지컬계'씨에게 묻고 싶다. 대체 뭘로? 외국에서는 이미 십년쯤 전에 초연하고 그뒤 전세계 각국 언어로 번안되어 몇년째,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에서는 공연을 하고 있는 작품을 국내 들여와서 그럴싸하게 번안해서 몇년 울궈먹다가 일본 가서 공연 좀 하고 객석 좀 채웠다고, 그게 '세계 뮤지컬 시장의 석권'이 된단 말인가? (내 말이 너무하다 싶으면, 그놈의 '조승우 같은 배우'가 <지킬&하이드> 말고 히트 친 게 뭐 있나 알려주기 바란다. <헤드윅> 빼고 -ㅅ-)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중에 <카르멘>이 있다 (예전에 공연했던 동명의 창작 뮤지컬과 같은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내 주변에서 직접 관람한 사람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지만, 공통되는 의견은 "홍보가 너무 덜됐다"는 거더라. 지방 순회공연도 이미 한 작품인데도 인지도가 극단적으로 낮다. 게다가 더 웃기는 건, 좌석 등급 중 VIP석 비율이 꽤 되는데도 예매 사이트에서 예매할 수가 없다. 현매도 안된다. 그런데도 어느 예매 사이트에나 VIP석 표를 판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석당 15만원이나 하는 표가 반값에 직거래되고 있다. 가끔 "은행에서 선물받은 건데 볼 생각이 없어 판다"는 내용도 있다. K은행이 VIP석을 전매한 다음 고객들에게 뿌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누가 좀 확인해줬음 좋겠다.
뮤지컬이라는 건 (영화든 연극이든 뭐가 됐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투자자가 빌려준 돈으로 제작사가 기획하고 스탭들이 만들고 배우들이 공연하고 관객은 돈 주고 산 티켓으로 관람하고 그 티켓값이 순수익이 되어 배우와 스탭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고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대가를 지불하며 다음 투자 약속을 받아내는 그런 흐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을 거다. 이 엉성한 요약으로도 간단하지 않은데다 실제로는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한국 뮤지컬계의 흐름은 별로 정상적이지가 않다. 분명 배우들이 공연하는 데까지는 같이 흘러가다가, 자기가 사지 않은 티켓으로 관람하는 관객, 순수익으로 계산되지 않는 티켓값, 배우와 스탭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보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어떻게든 투자한 대가를 얻고 제작사는 배를 불린다. 그 이상과 현실의 갭에 받아야할 것을 받지 못하는 배우와 스탭, 내야할 이상으로 내는 관객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는 가장 화려하게 핀 꽃에 맞춰진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 버려진 씨앗이 스스로 움터 살벌한 기후 속에서도 아름답게 꽃을 피웠을 때는 칭찬해 마땅하지만, 모든 씨앗에게 그러라고 강요하는 건 좀 곤란하다고 본다. 한 명의 배우가 대성공을 거뒀을 때, 그는 함께 공연한 다른 배우들, 스탭들, 연출가들, 작곡가와 작사가, 제작사, 투자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객로 이어지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의 발 아래를 댕강 잘라내어 다른 공간에서 똑같은 높이에서 똑같이 빛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상식적이고 건전한 투자와 제작, 관람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없다면, 배우의 성공은 날조된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자꾸 길어지면서 삼천포로 가다 미아리 넘어서 영종도 앞바다에서 아쿠아댄스를 춰버렸는데, 아무튼 내 이야기는, "조승우 같은 뮤지컬 배우가 10명만 있다면"과 "우리나라가 당장 세계 뮤지컬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텐데…" 사이에는 의도적으로 생략되고 외곡된 한국 뮤지컬계의 현실이 있다는 거다. 내가 조승우 본인에게 개인적으로 유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가 뮤지컬 배우, 그것도 스타급 배우라는 사실에는 심각한 유감이 있다. '조승우 같은' 배우 10명은 한국 뮤지컬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제작사가 떼돈을 벌어서 은행 잔고가 미어 터지고 넘친 돈으로 괜찮은 창작 뮤지컬 하나 만들어 볼 생각이 들 때까지 미친 듯이 관객 주머니를 털어준다" 정도 옵션이 풀로 가동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최근 시키 진출이 보도된 이래, 예전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뮤지컬 관련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허와 실들. 내가 어쩌다 뮤지컬 팬덤에 투신해서 이리도 속쓰린 자학을 계속하고 있는 건지, 오늘도 내 지갑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