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출발일은 10월 20일 저녁, 도착일은 23일 새벽 - 2박4일의 소위 '올빼미여행'이다. 목적지는 도쿄, 동행은 동생 곰탱이, 목적은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는 곰탱이가 더 이상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 되기 전에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는 것. 내 신분도 일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는 곰탱이를 위한 가이드였던지라, 딱히 반드시 어디를 가야한다든가 사야한다든가 하는 것 없이, 이틀 내내 안달하거나 헤메이거나 달리는 일 없이 (무려 닫히는 비행기 문을 향해 슬라이딩한 적도 없다!) 남들 다 가는 관광스폿이나 클릭하며 저기 가 보고 이거 먹어보는 팔자 좋은 초보 관광객 신세를 즐기다 돌아왔다. 응, 나쁘지 않았어, 꽤 재밌었다구 (끄덕끄덕)
사실 이번 여행은 좀 무리수가 많았다. 나는 지난 회사를 쉬고 다음 회사로 가기 전의 단 일주일뿐인 짧은 휴식 중에, 곰탱이는 무수히 날린 입사지원서가 몇배로 되돌리는 카운터어택이 심신이 지쳐가던 참이었으니까. 심지어 출발 전 차분하게 여행계획을 짤 여유조차 없었다 (토요일이 마감인 원고를 밤새 작성하고 출발 3시간 전에 지인에게 떠맡기고 돌아오는 길에는 정말이지, 다 때려치고 자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가기로 했고, 못 갈 이유도 안 갈 이유도 없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되는데까지 즐겨보자고 '지르는' 마음으로 공항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불출한 엄마외삼촌이 집나간 동안 쿠미 시터를 해준 토끼아빠에게 감사를 /꾸벅)
인천공항에서 곰탱이 도촬. 이번 여행에 무던히도 도촬을 당하다 결국 포기하고 모델로 어울려주었다(웃음)
난생처음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유쾌하고 안락했다. 24시간 내내 하하호호 오붓했던 건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화낼 말을 아끼고 웃을 말을 퍼냈다. 내 한몸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는 게 좋으니까. 그러니까 핏줄이란 거다. 사실 곰탱이놈이 많이 참고 잘 배려해줘서 그런 거지만 (알면 곰 고쳐...) 말 나온 김에, 우리 곰탱이는 착하지 머리 좋지 잘생겼지 돈도 잘 벌 예정이지(...) 성격 무던하지 게다가 밥도 잘해! 이런 놈 업어가는 아가씨는 졸랭 횡재수니까 나 같이 못되먹은 시누이 정도는 감수해도 돼! (...야;)
나는 밤의 공항을 꽤 좋아한다. 낮의 분주한 공항도 그 나름으로 살아 있는 것 같지만, 밤의 공항이야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낯선 영역이거든. 그러고 보니 출국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부터 내가 디디는 땅은 이미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든가. 고즈넉히 기다리는 비행기가 참 사랑스럽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 몇분의 몇으로 축소한 주석 비행기의 그 날렵한 허리를(웃음)
기내식. 역시 심야 전세기의 기내식은 편리한 삼각김밥으로 정해져 있나보다. 이 사진을 찍노라니, 대체 뭐하러 그런 걸 찍느냐는 과연 여행초보의 질문. 어이, 여행기에 사진 없으면 무슨 재미냐?
그러는 저는 벌써부터 가격대성능비가 좋지 않아 제돈 내고는 안 사마신다는 맥주 한캔 뜯으면서 일탈의 기분을 맛보고 있지 아니한가!!
하네다 공항 상공에서 찍은 (아마도) 도쿄의 야경. 삐꾸난 앞발이 똑딱이로 찍다(爆)
하네다제2공항에서 하네다제1공항으로 이동하는(그 반대인가?;) 버스 앞에서. 동생곰탱이의 초상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누님의 의지가 벌써부터 귀차니즘에 지고 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건 21일 0시 10분쯤이었고, 이쪽에서 저쪽(결국 기억이 안 난다;)으로 구내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출국 수속을 밟고 나오자 0시 40분이 좀 넘었다. 대기하고 있던 여행사 버스에 올라 호텔로 이동하는 걸 기다리는데, 30분이 넘도록 버스가 출발하질 않는다. 좌석은 거의 다 찼는데...알고 보니 고객 한 분이 버스를 타겠다고 해놓고는 사라지셨단다. 누군지 몰라도 가드 올려줬으면 한다 <- 벌써부터 꽤나 피곤했음.
간신히 도착한 숙소는 치산하마마츠호텔. 당연히(?) 하마마츠초에 있다. 처음 묵은 곳인데도 왠지 향수를 느끼게 하는 좁고 개성 없는 실내. 일본은 도쿄가 됐든 오사카가 됐든 비즈니스 호텔은 다 거기서 거긴가부다. 침대 위에 보이는 건 숙소 옆 편의점 습격의 결과물. 기왕 일본까지 왔으니 바로 자기는 아쉽고, 일본 '컨비니' 구경이나 하자며 졸려 비틀대는 누이를 꼬여낸 곰탱이가 정작 목표로 한 건 출국 전 자진반납한 라이터였다! 이런 골초 같으니!!
(그래도 여행 내내 나 배려한다고 꾹 참았다 꼭 피우고 싶을 때만 저기 바람 불어가는 구석에 숨어서 피웠으니 용서해준다...승객 1인당 사용할 라이터 1개는 소지 가능이라는 안내문 못 읽게 하려고 노력한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걸 먹었다. 좌측은 곰탱이, 우측은 동굴곰. 일본행이 정해지고 나면 파블로프의 종이 울리듯 머리 한구석에서 바닥을 외쳐대는 푸링 게이지가 이제부터 채워지기 시작한다. 동절기 한정 마롱푸링이었던 걸로 기억. 거기다가 내 사랑하는 소겐비챠! 한국에 돌아와서 건미차라고 출시되어 있는 걸 알고 광희난무 춤을 추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