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뮤지컬

<에비타> 유감

동굴곰 2006. 9. 5. 16:41
뮤지컬 EVITA 공식 홈페이지

찾을 게 있어서 모 포탈에 들어갔다가 에비타 광고 플래쉬를 봤다.
시작부터 참 강렬하더라?



남자 하나 믿고 덜렁 업혀서 상경했더니 유부남이라 뒤도 안 돌아보고 지 마누라 자식새끼 기다리는 집 들어가더니 등뒤에서 문 닫아버리더라는 엿 같은 상황에서 (그 남자란 것이 얼마나 찢어죽일 잡것인지는 차제하고라도) 그래도 어떻게든지 남자 갈아치워가면서 살아남았다. 당시 쿠데타의 주역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위치까지 기어 올라갔다. 그런 청춘을 보냈으니, 에바 페론은 창녀인가? 아니면 정치와 경제, 권력과 무력의 상관관계를 전략적으로 파악하고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국가를 다스리기 이전에, 당장 눈앞에서 주리고 목마르고 곤비한 (오래 전의 자신 같은) 자들을 위해,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과 나누면 된다"고 주장했던 그 짧고 화려하게 산화한 죽음이 성녀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것인가?

한 여자를 간단히 성녀와 창녀로 이분하는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그 여자가 이토록 기구하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짧고 굵게 살았던 에비타인 만큼 더더욱 화가 난다. 이미 끝난 한 여자의 인생을, 창녀였다느니 성녀였다느니 단편적으로밖에 평가하지 않는 건, 같은 의미에서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단적인 증거거든.
여기서 내 사회적 지위와 체면과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이건 <에비타>의 기획사가 어디들인지에 대한 편견과는 관계 없다. 있다면 오히려, '그래, 니네가 오죽이나 잘 했겠냐'는 비아냥 섞인 체념에 있겠지.

왠지 <에비타>, 보러 가기 싫어진다...(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