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단상
화려한 게임의 그늘밑 울고있는 ‘영자’야
다행히 나는 파견업체 소속되서 개평 뜯기면서 큰 게임회사에 빌려줌을 당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한달에 딱 이틀 쉬고 하루 12시간씩 2교대, 1주일 야간 근무 후 2주일 주간 근무의 로테이션은 돌아본 적 있다. 딱 두 달 그러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때려치지 않으면 한강에 몸 던지러 가기 전에 운영팀 파티션에 신나 뿌리고 불 붙이고 말겠다는 위기감이 들더라. (물론 근무환경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는 회사이기는 했지만 -ㅅ-)
아직도 많은 고객님들께서 운영자 팔이 108개쯤 되서 한 자리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CG 그리고 프로그램 짜고 서버 돌리고 웹 운영하고 이벤트 열고 게임내 모니터링하고 버그 잡고 계정도용 처리하고 메일 답변 주고 전화 받고 방문상담 응대하고 언론 인터뷰까지 한큐에 해치우는 줄 아신다. 사실 운영자가 하는 일이 저 가운데 절반 정도라는 사실은 알아도, 운영자를 CS와 SGM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또 모른다. 이 구분은 일부 회사 특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특성이라는 게 "안 나눠. 왜 나눠?"가 되면 좀 막해진다(...)
비록 후반부에 좀 쓰디쓴 경험을 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내 운영자 인생은 운이 좋았다. 예전 다녔던 G사는 운영팀의 대우나 운영(게임 자체의 운영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의 운영 말이다)에 있어서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거기서는 최소한 모든 직원이 정직원 혹은 3개월 수습기간 중이었고, (물론 개발자보다야 적었지만) 그럭저럭 어디 가서 어른들께 "이만큼 받고 일해요" 소리 했을 때 "좀 적구나" 소리는 들어도 "그거 받아서 생계유지가 되냐" 소리는 안 들을 정도로 받으면서 시작했다. (아무리 실수령액이라고 해도 그렇지 초봉 월 80이 말이 돼?;)
G사 나오고 나서,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10순위 안에 드는 회사치고 GM 정직원으로 뽑는 데가 진짜 없다는 걸 알고 놀랬다. "사용자와 직접 만나기 때문에 '회사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 말이사 좋지. 사실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대부분의 회사 내에서 "게임 운영자"는 "욕 먹으라고 푼돈 먹여주고 있는 젊은것들"이다. 고객과 실시간으로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그저 내려오는 지침과 템플릿에 맞춰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살아 있는 매크로 머신에 다름 아닌 거다. 그러니까 굳이 정직원으로 등록해서 대우해줄 필요 없지. 적당히 믿을 만한 인력업체와 계약하고 젊고 싱싱한 애들 왕창 받아다가 단물 빠질 때까지 굴리고, 누구 하나 리타이어 하면 다른 애 보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런 회사일수록 고객을 살아 있는 월 정액으로 본다. 인격체가 아닌데 무슨 피드백에 리액션에 의션 수렴이야. 운영자가 감정이 있고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 돈다발들은 무려 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걸고, 가끔은 찾아오기도 하는 게 아닌가? unbelievable!
모든 인력업체가 GM을 모집할 때, 1년쯤 근무하면 본사와 재계약을 통해 그쪽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 물론,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회사에게 인력업체가 파견하는 운영자는 소모품이다. 소모품으로 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유능하면 되지 않겠냐고? 운영팀이 10명이면 중간관리자는 1명, 중간관리자가 10명이면 운영팀장이 1명이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T.폴러스가 <꽃들에게 희망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사에도 있듯이, 인력업체 소속의 파견된 운영자들은 근무중인 회사에서 정직원들이 보장받는 어떤 복지나 수당도 받을 수 없다. 그뿐인가? 회사는 그들에게 어떤 근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다. 인력업체에 파견의 대가를 지불하고, 업체는 그 대가에서 자기네 수수료를 제하고 운영자들에게 급료를 지불한다. 이런 걸 좋은 우리말로 개평이라고 한다지?
(물론 회사에 따라 운영자의 '소속만' 인력업체로 하고 보수는 직접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더라도 소속이 그네 회사가 아닌 이상 당연히 복지를 보장해줄 의무는 없다. 또 인력업체는 어떻게든 '자기네 직원'이라는 소속을 빌려준 값을 받는다. 그 값을 회사가 지불할까? 당연히 파견된 운영자들의 급료에는 인력업체에 지불해하는 금액이 분산 부담되어 있다)
게임업계가 몇 십년이나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 바닥에 노조가 없는 이유는 "개발자는 수틀리면 딴 회사 가면 그만이라 필요를 못 느끼고, 운영자는 잘리면 그 회사 몇년 일했든 신입으로 딴 회사 들어갈 때까지 삼각김밥에 컵라면이라 꿈도 못 꾼다"더라. (내 생각에 평균 연령층 문제도 있는 것 같지만;) 이 무슨 조낸 안습스러운 이야기란 말인가.
그 어떤 게임회사에서도 운영자는 개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운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비록 그들 자신조차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기를 바라는 게 그렇게나 무리한 희망일까.
아우, 생각하면 할수록 안습에 한숨이다. 일이나 하자, 일이나. 어차피 내 팔자도 이제 게임업계에서 벗어나기는 그른 거 같으니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