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기
고전? 진부하지
동굴곰
2008. 7. 4. 14:44
왜냐하면 그건 고전이니까.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평해지고 논해진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말한다. 설사 읽어본 적 없더라도 제목이나 작가 정도는 들어보았고,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고, 몇몇 등장인물이나 개념쯤은 인용 당했을 때 알아차릴 수 있고 - <1984년>을 정독하지 않더라도 빅브라더를 알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 심지어 이미 읽은 사람들의 서평이나 리뷰, 감상문을 통해 마치 자기가 읽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그런 친숙하고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책이 바로 고전이라고 불리는, 살아남은 승자들인 거다.
그러니까 제발, '이제야' 읽은 고전을 진부하다고 평하는 아해들은 좀 그만 보고 싶다.
쓰여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일수록 참신할 가능성이 높은 것과 비례하여, 쓰여진 지 오래되었을수록 구태의연하고 촌스럽고 보수적이고 구식일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태어나 살았으니 당연하게 체득한 수준으로 자신의 시대밖에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피상적인 이해를 기준으로 모든 지난 시대의 모든 고전들을 논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다.
<소년탐정 김전일>을 먼저 읽은 탓에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을 한 챕터만에 파악했다고 해서 <점성술 살인사건>이 진부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이미 4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니까.
(언제나 자기 세대를 기준으로 과거에 쓰여진 책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있어왔지만, 특히나 요즘 아해들을 보고 있자니 - 너희는 훈민정음을 두고도 맞춤법이 틀렸다 빨간펜을 그어댈 것이요, 라이트 형제가 처음 띄워올린 비행기에 스튜어디스 봉춤 출 자리가 없다 불평할 것이며, 벨의 전화기는 만져도 반응하지 않으니 헵틱이 더 우월하다 우기겠구나 - 싶다 /한숨)
최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조금 전 모처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해당 장르의 고전이자 대작으로 평해지는 작품이 진부하다는 평을 받는 걸 보고 조금 발끈했다. 게다가 같은 장르의 국내 최근작(...이라고 해도 비교대상에 비해 비교적;)이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받는 걸 보고 - 모처의 어느 아해가 "셜록 홈즈의 소설 등장인물들이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게 가식적이라 싫다"고 한 걸 본 이래 오랜만에 제대로 열받아서 한 꼭지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