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기

<소금의 거리 塩の街-wish on my precious>

동굴곰 2008. 2. 16. 22:40
<소금의 거리>
작가 : 아리카와 히로 (有川 浩)
번역 : 김소연
출판 : 대원씨아이
출판일 : 2007년 2월
가격 : 6,000원

내 멋대로 레벨링 : ★★☆☆☆ (플롯/번역/삽화에서 각각 -★)
내 멋대로 20자평 : ...그렇구나, 이것이 라이트노벨...


최근 읽어야할 책도 잔뜩 쌓여 있는데 읽은 책만 읽고 또 읽어대는 스스로에 경종을 울리고자 새로 산 책(...야;)
나름 일각에서 평이 좋길래 설마 후회하지는 않겠지 싶었는데 읽고 난 지금 기분은 "그래도 이*야를 내 돈 주고 산 것보다는 낫지."
...사실은 그런 경제적 타격을 자초한 적은 없다. 누군가 나한테 버린 한 질 잘 읽고 나도 누군가에게 버렸을 뿐.  다시 말해, 이 곰은 모처에서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장편소설을 벨로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

소금이 세계를 뒤덮는 염해(鹽害)의 시대. 소금은 점점 거리를 삼키고 사회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 붕괴 직전의 도쿄에서 살아가는 남자와 소녀. 남자의 이름은 아키바, 소녀의 이름은 마나. 조용히 살아가는 두 사람 앞으로 여러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떨 때는 온화하게, 어떨 때는 격렬하게, 어떨 때는 비참하게. 그것을 지켜보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 같은 거,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부추기듯이 속삭이는 남자가 두 사람에게 운명을 데려온다. 제10회 전격게임소설대상 <대상> 수상작. 압도적인 필력으로 보내드리는 SF 러브 판타지!

이상 YES24에서 퍼온 책소개.

확실히 작가 필력은 좋더라.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그게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알고 있는 듯. 단지 이 책이 '압도적'이 되지 못한 건 별점에서도 적었지만 세 가지, 플롯과 삽화와 번역이다. <소금의 거리>에 대한 감상을 몇 개 접했을 때는 <까페 알파> 같은 장르 - 굳이 단어를 덕지덕지 붙여 설명하자면 '휴머니즘 하트풀 디스토피아물' - 인 줄 알았다. 그래서 구입한 건데, 초반에는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약해진 곰의 눈물샘을 지그시 찔러주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scene 3부터 분위기가 반전 - 아니, 그 각도로 급회전을 해버리면 배신이라고요, 나한테는ㅠ.ㅠ
다루는 주제나 설정된 플롯에 비해 원고 분량이 턱없이 모자랐다는 느낌. 이게 단권이 아니라 세 권 정도의 분량이었다면 좀 더 농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비록 그 경우 모 소설과 완벽하게 같은 장르로 분류되서 내가 손댈 일은 아예 없었을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리고 삽화...작가, 정말 이 삽화에 만족하고 있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라이트노벨을 정의할 때 일러스트가 반드시 언급되는 속성에 의거하자면, 이런 일러스트로도 책이 팔려요?! 이건 뭐 대갈로 채워진 중딩 연습장도 아니고, 이런 것도 프로페셔널의 개성적인 데포르메로 통하는 업계가 있다면 절대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기분.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 읽는데, 내가 어지간하면 삽화 들어간 소설책 대놓고 읽는 걸 민구스러워하지 않지만, 이 책 만큼은 정말 삽화 나오는 부분만 되면 읽는 속도가 세 배는 빨라지더라...겉표지 벗겨서 들고 다녔다니까 증말 ;ㅅ;

마지막으로 번역. 예전 저쪽 업계에 발목을 살짝 담궜을 때 편집장님이 하신 말씀이, 번역자에 따라 맞고 안 맞는 장르가 있다고 했다. 꼭 남녀노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장르를 많이 읽었고 어떤 분야에 지식이 있고 또 얼마나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번역의 퀄리티가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알기로 이 책 번역자, 비록 이 책은 첫 번역이라고 후기 적어놨더라만 1권부터 쭉 번역 맡아서 지금 8권 나온 책도 여전히 번역 퀄리티 놓고 평이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다. 일상적인 '일본어'의 번역에는 별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 이 번역자는 심각하게 '전문용어'에 약하다. 다시 말해 번역에 필요한 문학적 소양과 인문사회학적 학구열이 부족하달까...
구구절절 지적하자면 이건 뭐 '변경에서 사우자를 외치는 곰'이 될 테니까 사양하고, 다 읽고 난 뒤에 굉장히 거슬거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두 가지만 언급할까 한다. 이좌二佐니 공위空慰니 하는 자위대 계급을 그대로 써붙인 것 따위는 언급할 가치도 없고 =ㅅ=

내멋대로 20자평에서 '라이트노벨' 운운한 건, 이 책을 집어든 건 반쯤은 요즘 라이트노벨 트렌드랄까 코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잖았다. 그리고 역시, 읽은만큼 안다고, 어느 정도 감은 잡은 거 같다 - 예전에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이나 <GOSICK>을 읽었을 때처럼. 몇 권 더 읽고, 많이 듣고, 그리고 좀 더 생각해야겠다. 이 책도, 내용 다 잊어버릴 때쯤 다시 읽어봐야지. 책장에 간직해둘 가치는 있으니까 :3


ps. 찾아보니 아리카와 히로의 책은 <소금의 거리> 말고도 <하늘속> <바다밑> 두 권이 더 나와 있던데, 책 소개를 보면 대략 분위기는 비슷한 거 같다. 일상의 잔재가 안타까운 비일상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자, 누군가는 '함께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이야기. 단지 <하늘속>은 번역자가 같고, <바다밑>은 아예 번역자 표기가 없네. 내가 좀 더 분발해서 차라리 원본을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뭐, 인문서적이고 소설이고 라이트노벨이고 나날이 번역 퀄리티가 이 모냥이니 =ㅅ=
pps. '나'라면 아리에가 쏟아부은 그 통렬한 이기주의에 반박할 말이 딱 그 분량만큼 있었겠지만, 이것이 여고생과 아줌마의 인생 연륜의 차이 (핫핫) 그만큼 하고 싶어진 말은,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하게 되겠지. 이 역시 책을 읽은 보람 :3